'엄마'란 무엇일까 - TVN 드라마 <하우스키퍼> 시청 후기
퇴근 후 엄마와 TV를 보고 있었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하우스키퍼>라는 단막을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시작을 보진 못했지만 밍숭맹숭한것 같더니만 자꾸만 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이 드라마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떠오르게 했다. 리모컨을 내려놓고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 단막을 볼 예정이라면 결말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람!)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두 친구 상미와 미진. 둘은 자라서 간호사가 되었고, 멋진 집도 구했다. 가족이자 친구인 두 사람은 한 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교대근무에 지쳐가는 와중 ‘하우스 키퍼’를 고용하게 된다.
일을 잘하기로 명성 자자한 가사도우미. 첫 대면에서 음침하고 어두운, 어딘가 사연있어보이는 모습에 고용을 망설이는 두 사람. 걱정이 무색하게 그가 다녀가면 집이 반짝반짝하게 변하고, 호텔보다 말끔하다. 일의 효율도 올라가고, 집안일 하나만 안했을 뿐인데 이게 사는거구나 싶다!
상미와 미진만 있던 집, 의문의 중년 여성은 두 사람의 관계를 점차 변화시킨다. 상미와 미진의 마음 속 ‘엄마’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자꾸만 건드린다. 감기 몸살로 아픈 상미에게 정성스레 죽을 쒀주고, 여자 둘이 산다고 유독 더 지적질하는 아랫집의 민원에 나서서 싸워준다. 상미에게 그는 ‘엄마’가 되어간다.
상미는 주에 하루 쓰는 하우스키퍼를 이틀 쓰자고 미진을 조른다. 내키지 않지만, 수락한다.
그간 엄마의 빈자리를 상미와 미진은 서로 채워주며 살았다. 상미는 엄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상상 속 엄마는 따뜻하다. 반면, 미진은 엄마에게 버려진 날의 기억을 또렷이 가지고 살아간다. 미진의 머릿 속 엄마는 차갑다. ‘볼 일 보고 올게’라는 말은 다시는 안 볼때 하는 말이라며 화를 낼만큼 혼자가 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그런 미진은 상미에게 ‘엄마’의 역할을 자처하며 엄마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웠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확인해왔다. 상미는 그런 미진을 엄마같은 친구로 의지하며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하우스키퍼의 등장으로 미진은 상미에게 자신이 했던 엄마이자, 친구이자, 가족의 역할들이 점점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상미는 이제 더이상 미진의 그늘이 아닌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 이제 보육원에 있던 애 아니야.”
상미는 먼저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아간다. 그 모습은 미진에게 ‘유기’에 대한 불안을 자극한다. 가족이라곤 자신밖에 없던 상미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운 미진은 상미에게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화는 ‘하우스키퍼’라는 제3자에게 돌아간다.
살면서 크게 싸운 적 없던 둘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다. 미진은 하우스키퍼를 해고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광기어린 미진의 집착이 시작되고… 놀란 상미와 키퍼… 의도치 않게 미진은 상미를 다치게 만들고, 그제서야 정신이 든다.
미진은 상미에게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편지에는 넌 내 엄마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었다는 내용과, “볼 일 보러 갈게” 라는 마지막 인사가 담겨있다.
아이를 잃은 아픔이 있는 여인, 엄마를 잃은 두 친구. 세 사람의 이야기가 각기 입체적이고 좋았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세 사람이 각자 알을 깨고 나아가는 결말까지. ‘엄마’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이든 울릴 수 있는 마법의 단어인 것 같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결핍과 위안이 동시에 존재하는 단어라서 그렇다. 나에게는 엄마가 있지만, 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엄마와 이 드라마를 같이 보며 각자의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란 무엇인가, 대체 어떤 존재길래 듣기만 해도 슬플까’ 하며 엄마 생각에 빠졌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