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 때 두 개의 일기장을 썼다. 학교에 제출하는 일기, 하나는 나만의 비밀 일기. 비밀 일기를 쓰고 자물쇠를 잠그면 마음이 홀가분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가끔은 스스로에게도 속이고 싶은 내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다투면 어린 나는 신랄하게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르는 글을 썼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의
‘진짜’ 부모를 기다리며, 욕 한 자 없이 메마른 일기를 썼다. 그러나 어른이라면 외면하고 싶은 기억을 낱낱이 열거한 진술서에 가까웠다. 어른이 생각하는 아이의 관찰력과 분별력은 상상 이상으로 날카로웠다. 애들 앞에선 찬 물도 마시지 말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다. 그런 일기를 부모에게 들켰을 때 서로가 느낀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가족 로망스’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세계에 ‘엄마와 아빠’ 뿐이던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부모의 부족한 점,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 속 부모와 현실의 부모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대단히 멋진 진짜 부모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며 상상하기 시작한다. 그 시기를 지나야지만 다시 인간적인 나의 부모, 그들의 최선을 인정하고 조금은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가끔 지나간 생각들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글자로 적힌 깊은 속마음을 눈으로 보게 되면 내가 했던 생각들이 낯설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설령 나의 잘못이 아닐지라도 남의 허물에 엄격했던 내가 너무도 부끄럽다. 인간의 오욕칠정이란 어쩜 이리 하찮은 지. 찰나라도 내 안에 이러한 감정이 스쳤다는 것을 돌이켜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핵폐기물처럼 종이에 가둬두고 다시는 펼치지 않는 글들이 지금도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부모가 아니라 현실의 부모도, 현실의 나도 그대로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타인의 부족한 점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자 나의 허물을 되돌아 보는 것이다. 부족한 나,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가짜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인 채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노력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대단한 나’를 상상하며, 기다려도 오지 않는 ‘진짜 부모’를 상상하며 현실을 외면한다. 나 역시 상상 속 부모를 찾아 헤매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난 일기 속의 감정을 성장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완전하지 않은 나의 부모와 나를 이제야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