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가족'이란 없다
혼자가 아닌 물건들이 많다. 젓가락, 윷가락, 양말, 눈, 귀…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 없으면 불완전해지는 존재들이다. 난 가수 동방신기를 좋아했는데 팬들은 늘 ‘5-1=0’을 외쳤다.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전체의 의미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땐 그랬다. 그런데 하나 없어져도 사실 별 문제는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다 살아진다. 필요하면 새로운 짝을 찾을 수 있다. 변화를 발판 삼아 전보다 성공하는 경우도 많다. 또 어떤 땐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것이 전체를 살리는 길일 때도 있다. 가족도 그런것 같다.
가족은 인간이 삶에서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의 모습이다. 아이는 가족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 규범, 행동을 배운다. 가족 다음으로 아이가 만나는 확장된 사회는 ‘학교’다. 그 다음 진짜 세상으로 나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가족은 한 사람을 처음으로 세상과 연결시키는 통로이자 배움터다. 난 학교에 입학한 뒤 처음 다른 친구들의 집에 놀러갔다. 집집마다 먹는 음식부터 생활의 모든 것이 달랐다. 보리차만 끓여 먹는 집, 김치에 굴을 넣는 집, 형제가 정말 많아서 간식이 남아나질 않는 집, 강아지를 키우는 집… 다른 가족들은 이렇게 사는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생활 방식이 다르듯이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는 방식도 다양했다.
모든 가족의 모습은 다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가족의 ‘정상성’에 유독 집착한다. 엄마, 아빠, 자녀로 구성된 형태의 핵가족 형태를 ‘정상가족’으로 치부한다. 나도 다양한 가족의 모습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적이 있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성격이 잘 맞아 그 어느 친구들보다 즐겁게 지냈던 룸메이트였다. 그와 방에서 밥을 먹는데 계속 전화가 왔다. 그의 아버지였다. 전화를 받지 않고 거절을 누르는 친구에게 “아버지 전화인데, 안받아도 돼?”라고 말했다. 친구는 한숨을 쉬며 “저한테 전화 하려면 돈이나 보내고 전화 하세요.” 라며 뚝 끊었다. 잠시 뒤 띵동 소리가 나며 친구의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한테, 어른한테 예의가 아니지 않냐”는 말이 나오고 말았다.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가족이면 이래야 한다’는 경험적 사고에 따라 말을 뱉었고, ‘어른에겐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개인적 도덕 규범을 그에게도 적용했다. 친구는 왜 그렇게까지 차갑게 아버지를 대할 수 밖에 없었는지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나의 말이 그에게 폭력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선택하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고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을 이루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최근엔 전통적 틀을 깨는 ‘가족’의 형태가 많다. 드라마 <가족계획>, <조립식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여주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가족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원가족을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상처를 준 가족에게까지 의무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해서 꾸려갈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가족의 형태가 어떻든, 모든 가정이, 모든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다. 가족은 삶의 전부가 되기도,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사회가 정한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평범한’ 가족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족의 형태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