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과 위징
<정관정요>라는 책이 있다. 중국의 오긍이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측천무후의 정치를 비판하며, 당의 황금기였던 태종 대 그 신하들의 정치를 되짚어보는 내용이다. 당 태종에게는 ‘위징’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위징은 간언을 잘 하는 인물이었다. 태종의 말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었다는 거다.
하루는 위징이 간언을 하자 태종이 너무 열이 받아서 칼을 뽑아 목을 베려다가 꾹 참고 다시 칼을 넣었다고 한다. 다른 황제였으면 벌써 열번도 더 죽였을텐데, 태종은 그러지 않았다. 심지어 위징이 죽었을 때 태종은 그 집에 찾아가서까지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태종과 위징의 이야기는 이런 교훈을 담고 있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이 옳은 말이라면 귀를 열어라, 적이라도 심복으로 받아들여라.
그들은 ‘참을 수 있는 자’와 ‘말해도 되는 자’를 서로 알아본 관계다. 당 태종의 대단한 점은 화가 난 상태에서도 칼을 집어넣을 수 있었던 절제력, 자존심과 분노를 관리할 수 있는 통치자의 자기통제력이다. 상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의 태도다. 위징 역시 목숨을 내어 놓을 각오로 충언을 바쳤다. 그것은 옳은 말을 들을 수 있는 황제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입장이 부딪힐 때 사람들은 서로의 입장만을 설명하게 된다. ‘아니 근데’의 굴레에 갇혀 끝없이 싸우게 된다. 반박을 위한 반박이 되거나, 말 속의 좋은 의도를 잃고 날카로운 말의 껍데기만 허공에 남고 만다. 그럴 때 상대의 말이 나를 위한 이야기인지, 오로지 나를 이기기만을 위한, 혹은 상처주기 위한 말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 태종과 위징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이기는 것은 억울한 것을 얼마나 더 잘 참아 내느냐의 싸움이다.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도망치지 않고 잠시 멈춰서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려 보는 것.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