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by 영이

사흘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회사에서 출발하면 얼마나 걸리냐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나오기 어려운지 물었다. 오는 길에 물건 담을 가방도 좀 가져오라고도 했다. 짐을 좀 담아야되는데, 최대한 크고 많이 들어가는 걸로. 이유를 재차 물어도 할말만 이어가는 아빠에게 왜 대답을 안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냈다.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뭔가에 쫓기는 듯한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미친듯이 차를 몰아 병원에 도착했다. 동생의 병실은 병동 제일 끄트머리 안쪽에 있었다. 얼마 전 옮긴 1인실이었다. 병동을 가로질러 데스크 앞을 지났지만 늘상 인사하던 간호사들이 못 본듯 내 눈을 피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침상에 누워있는 동생보다 병실 안을 가득 채운 동생의 짐들이 먼저 보였다.

발 디딜 틈 없는 병실 안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짐 사이에 앉아있던 엄마와 아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겨우 그친 울음을 다시 울었다. 자는 듯 평온한 표정이었다. 동생은 창가에 놓인 화분보다도 미동이 없었다. 동생의 시간은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움직이는 모든 사물들 사이에 혼자 사진처럼 멈춰있었다. 공기에 닿은 모든 곳이 차갑게 식었는데 누워있는 뒷통수는 아직 따뜻했다. 병실 밖으로 짐을 꺼내는데 열린 문 사이로 기웃 거리는 말 많은 보호자 몇몇이 안을 훔쳐보는게 느껴졌지만 화를 낼 기운이 없었다.


퇴원 수속을 밟았다. 집이 아닌 병원 옆 건물로 간다는 것이 너무나 낯설었다. 가끔 병동 주차장이 만차가 될 때가 있었다. 주차장 초입의 표지판에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다. 왼쪽과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옆에는 정 반대의 도착지가 적혀있다. 장례식장 가는 길, 병동 가는 길. 아무리 자리가 없어도, 난 한번도 그 앞에 차를 댄 적이 없었다.


사진과 옷을 골랐다. 동생의 마음에 들 법한 것들로 고르고 골라도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동생을 다시 만난 건 입관식 때였다. 내가 고른 옷을 곱게 입고 누워있었다. 한 쪽 다리가 살짝 굽은 채로 굳어서 오른 발에 신긴 버선이 자꾸만 삐뚤어졌다. 똑바로 고쳐봐도 펴지지가 않았다. 빈소에 돌아오니 최근 엄마와 크게 다투었던 외숙모가 뭘 잘못했다는 건지 모르게 계속해서 빌었다. 더 슬퍼할 겨를은 없었다. 직원들은 사인하라며 영수증을 들이밀었고 정신없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야했다. 향이 꺼지지 않게 새벽 내 잠들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깜빡 졸았다.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매일같이 장사만 치르는 장례식장 직원들도 젊은 사람의 죽음 앞에선 숙연한 얼굴로 위로를 건네왔다. 발인 날 어느 하나라도 빠진 건 없는지 확인하느라 신경이 곤두섰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큰 외삼촌은 나를 보자마자 평소처럼 믹스 커피를 한 잔 타달라고 했다. 화가 났다. 매일 찾아왔던 동생의 친구들은 사흘째에도 아침 일찍 도착했다. 이번에는 어제 막 군대에서 전역한 친구도 함께 왔다. 옷이 바뀌질 않아서 물어보니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내리 있었다는 거다.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다 주었지만 어차피 똑같은 육개장에 수육이었다. 편하게 먹지도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있는 덩치 큰 스무살 짜리 남학생들이 내가 가져다 줄 믹스커피만 기다리는 큰외삼촌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부서 이동이 있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 스몰토크를 시도할 때 형제 관계를 묻는다는 것을 미처 잊고 살았다. 평소라면 ‘동생이 있어요’ 라고 답했는데 동생이 있었다? 있었는데 이제 없다? 어떻게 답해도 이상했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외동이라는 답이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해선 미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럼 혼자여서 외로웠겠네, 공주처럼 컸겠네~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욱하고 말았다. ‘제가 외동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상하다는 건 나도 알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 마치 동생을 지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 답을 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그렇다고 드라마 <은중과 상연> 속 상연처럼 거짓말을 하기는 싫었다.



어느 날 한 동료와 단 둘이 있게 되었는데, 그는 몇 해 전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갑작스런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물어볼 때면 그냥 잘 지낸다고 말한다.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다. 대리님도 그렇게 말해요. 조용히 끄덕였다. 난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남편도, 나의 동생도 잘 지내고 있다. 가끔 동생과 비슷한 차림새의 누군가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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