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만족 총량의 한계선에 서서
몇 번은 정말 열정적이었다.
짧았지만, 분명히 불꽃이 일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지금도 나만 아는 작은 씨앗으로 남아,
어디선가 아주 미세하게나마 나를 떠받치는 것들도 있다.
그러면서 내내, 무득 우울했다.
스무 살 초반에 읽은 양귀자의 『모순』은 지금도 내 인생책이다.
이름이나 숫자 외우는데 취미가 전혀 없던 내가 책의
주인공 ‘안진진’이라는 이름은 읽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소설 속 안진진의 어머니는 쌍둥이였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환경에서 자라, 평생을 비슷한 삶을 살 것 같았던 두 사람은 결혼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한 명은 사모님으로 한 명은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그리고 둘 중 한 명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결말은 살면서 계속 가슴에 자리 얹혀있다.
작가의 의도와 다르겠지만 (아마도, 찾아보지도 않았다)
나는 그 죽음을 ‘도레미’ 중 끝없이 ‘미’만 치는 삶으로 이해했다. 멈출 수도,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이 한자리 음에서 제자리걸음하는 상태.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수긍할 수 있는 엔딩이라고 할 수 있다
직업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농도의 경험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봤다”는 충만함과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공허함을 인정하며 살았다. 두 감정은 늘 시기를 맞춰 찾아왔었고 당연한 일이라고 받아들였지. 때리면 아픔을 느끼는 통각처럼 그러다 문득, 앞으로의 인생에 축하받을 일도, 축하해야 할 일도, 너무 하고 싶은 일도, 꼭 해야만 해야겠다고 다짐할 일도. 크게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의 끝맺음은 억척스러울 수는 없겠구나라는 예감도 들었고 천천히 잠식당하는 중인 것 같다.
어쨌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사고 치지 말자
그게 지금 내가 세운 가장 솔직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다.
그러자니
불행복.
불-행복.
그것이 문제가 됐다. 주변에 미워할 게 별로 없어서 탓으로 돌릴 것 없는, 핑계 삼을게 딱히 글로 적어내리기가 심심하지만 나 혼자선 그게 최대의 이슈인 불행복은 무엇일까. 술과 우울을 가려놓은 자리엔 어떤 자국이 남을까
이 글은 그 마음에서 출발한다.
우울함을 끌어안고도 살아가야 하는—
아주 사소하고, 아주 구체적인,
내 현실의 기록을 남기려 한다.
스스로에게 조차 스쳐 지나갈 이야기였지만
오늘부터 만큼은 살아 있는 문장들이기를 바라며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