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만들어낸 나로 너무 오래 살았다

그러니 나는 늘 ‘헤픈 긍정‘속에 있었다

by 퐝클리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건 도식이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관심을 줘야 한다는 건 전제다.

어떻게 응용이 되든 정답이 될만한 이상형은 있었으니

그 외연을 외우면 됐다.

나는 내가 말하는 그대로 남이 나를 봐주길 바랐다.

남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 선행에 있어서는 감성적이지만 대부분의 판단은 이성적이라 깔끔한 사람. 어디에다 걸어도 괜찮아 보이는 수식어가 내 눈과 입, 그리고 손끝을 치장하고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나의 모습이란 증명도 뿌리도 모호해 공신력 따위 없는 추구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세속화된 데이터에 의해 쉽게 함락되곤 했다.

소위 사주에서 나오는 ‘기질’과 mbti 유형이 그랬다. 남들은 어쩐지 다 납득하는 나다움에 대한 정보값인데, 정작 나는

‘아 내가 그래?’ 란 반응만 가능할 뿐이다. 이런 것들은 간혹 정확성과는 아무 상관없이 내가 감추고 싶은 것을 별 거리낌 없이 까발리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나는 나를 모른 채, 말로만 만든 나를 너무 오래 살아와서 그런 날은 방어조차 잘 안 됐다.


머리로 익힌 취향이 없으면 헤매게 된다.

무언가를 솎아내야 할 때. 쓸 수 있는 거라곤 남의 평가로 짜여진 망이 거친 ‘체’뿐이다. 판단할 기준이 없으니 웬만한 상황에선 헤픈 긍정이 가득했다. 그로 인한 지나친 낙관은 쉽게 주어진 것을 포기할 수 있게 했고, 위험을 감지해야 할 때는 아무 방비도 없이 낙천해 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니깐 나의 뇌는 스스로 정리되지 않은 문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안의 활자들이 서로 밀치며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고 그 틈사이로 문단이 파편 되어 나뒹군다.

이 혼란함을 껴안고 가야 하는데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건…

말로 만든 나를 내려놓고, 그저 나로서 살아가는 문장을 스스로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조차 도식 같아서다.

이제 와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일조차 허망한 추구미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스스로에게 가장 큰 관심을 줘야 한다는 그

‘전제' 아래, 나는 어디까지 구를 수 있을까.


이러니 저러니 여전히 난 말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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