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된 말
“두려워하지 말고 느어”
경동시장 안에 잘 가는 함흥냉면 식당이 있다. 지금은 여러 유튜버의 영상으로 시즌이면 긴 줄을 서야 맛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불과 3~4년 전에는 시장 안에 으레 있는 여러 맛집 중 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입맛 따라 여기저기 마실 다니시는 시장 단골들이 별스런 수고 없이 즐기기 좋은 곳이었다.
내가 냉면집에 처음 갔던 날, 주인할아버지께서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며 식초를 많이 넣어야 한다고 했다. 많이라.. 마트에서 파는 식초가 무슨 남다름을 선사하겠는가 싶었다. 게다가 식초의 강한 향과 신맛 때문에 냉면 맛이 이상해면 어쩌지란 생각. 대충 네네 하며 쪼륵 넣는 시늉만 하려 했다. 하지만 냉면집은 한가했고 친절한 주인할아버지는 내 일행이 앉은 테이블 곁에 서서 겨자보다 식초 많이 넣는 게 맛있다고 재차 말하셨다. 별 수없지… 조금, 쪼르륵 넣고 비비자 주인 할아버지께서 답답하듯 말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느어”
식초를 몇 바퀴 둘르란 말도 없었다. 나의 취향과 상관없이 식초로 완결되는 맛을 보여주겠다는 고집스러움이야 음식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해도 적정량도 없이 다만 두려워 말라니… 의아했다. 처음엔 하루에도 숱하게 쌓이는 그냥저냥 한 말들 중 하나였는데, 어느새 내가 품고 있었다. 왜 기억하고 있는지, 문득 떠올렸던 순간은 무슨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이 의아함은 낯선 것이었지만 시간과 버무려져 잘 묵은 ‘말‘로 내가 쓰는 단어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선언적 의미를 갖게 된듯하다. ‘파상’ 같았다.
그래서 가끔 이 ’ 말‘ 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냉면집 할아버지의 말이 아주 천천히 진동시켜 만들어낸 파상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만 했다. 내가 다짐의 실체를 위해 필요했다.
천천히 간을 맞추며, 나름의 균형을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더하는 것은 과한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는
정교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 흔들렸다는 걸 이제 안다.
동그란 지구 위 한 점에 서서 이쪽저쪽을 따지는 건 이제 의미 없을 듯하다. 갈망을 향해 뛰는 동안, 진탕이 된다 해도 그만큼 두려움 없이 나아갔음을 기억하고 싶다. 이 주저리주저리 긴말을 줄이고 줄인 게 ’ 두려워하지 말고 느어 ‘겠지. 좀 더 내게 맞는 말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식초를 넣은 냉면 맛이 어땠냐고?
아주, 정말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