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원

영수증 뒷 줄에 적힌 불황

by 퐝클리

동네에 천 원짜리 빵집이 생겼다.

요즘엔 가챠샵도 그렇고, 천 원을 전면에 내세운 가게들이 부쩍 늘었다.


뉴스가 이런 이야기를 다 룰 때는 대국적으로 한다. 하지만 천 원은 대국적이지 않다 상당히 개인적이다.

잘 살고 못 살고의 기준은 사람의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불안 사회이지 않나

나도 그 빵을 샀다가 뒤늦게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지도 모르고 맛이 이상해서 그제야 확인했다. 사장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사과가 유통기한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천 원짜리 빵을 살 때, 우리는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

맛을 상상하지도 않고 실패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괜히 손이 간다.


비싸지 않으니까 후회해도 괜찮고,

실망해도 스스로를 나무랄 이유가 없으니까

불황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잘 사는 선택’보다

‘망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된다.


천 원짜리 빵을 파는 사람들도 그렇다.

이윤을 크게 남기려는 장사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계산에 가깝다.

크게 벌지 않아도 좋으니,

크게 잃지 않겠다는 마음.

요즘 장사는 야망이 아니라 체력으로 한다.


가챠샵 앞에 서면 비슷한 기분이 든다.

뭘 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잃을 것도 크지 않다는 확신.

불황의 소비는 언제나 확률 쪽으로 기운다.

확실한 만족은 비싸졌고,

작은 기대는 아직 감당할 수 있으니까.


천 원짜리 빵은 위로처럼 다가온다.

오늘 하루쯤은 아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 빵을 들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위로를 받았는데, 동시에

이런 위로가 필요해졌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큰돈을 쓰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가게를 지나친다.

고르는 대신 피하고,

기대하는 대신 포기한다.

천 원짜리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인생에서 큰 선택은 미뤄진다.


그래도 오늘 나는 또 그 빵을 산다.

내가 가난해져서가 아니라,

불안해졌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천 원짜리 빵은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라기보다

마음을 달래기 위한 습관에 가깝다.


불황은 이렇게 온다.

뉴스가 아니라

영수증의 맨 아래 줄에서.


선택이라고 보이지만 사실 선택도 아니고

설명으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지 않을까


글을 쓰면서 문자 문장 사이 나는 많은 빈틈을 놓았다. 설명할 말을 잘 모르겠다.


결론은 나는 환불은 받았다. 그러나 사장은 바빠서 확인을 못 했다는 변명도 같이 들었다. 이 것이 등가일까


월, 수 연재
이전 11화말은 빠르고,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동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