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살았는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이유
<흑백요리사>에서 백수저들이 얻은 인기에 대해 제작진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과거에는 무조건적인 평등이 공정이라 생각했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그들이 쌓아온 경력과 업적에 대해 정당한 예우를 해주는 것 또한 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즉, 성실하게 쌓아 올린 시간의 반석 위에서 끊임없이 노력해 온 대가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공정으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TV 프로그램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서사를 현실로 가져온 순간 한 가지 질문이 고개를 든다. 과연 현실의 성실함이 여전히 안정을 약속하는가. 보통의 사람들도 묵묵히 시간을 견디며 노력한다. 언젠가 도달할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보람보다는 깊은 불안이다. 그러니까 요즘의 불안은 게으름이 아니라 보상받지 못한 성실에서 시작된다. 쉬면 뒤처질 것 같고, 멈추면 그대로 낙오될 것만 같은 공포. 이제 우리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왜 우리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성실'을 강요받는가. 요즘의 불안은 게으름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성실해져야만 하는 삶의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다. 주인공은 그저 너무나 성실했을 뿐이다. 남들이 피하는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면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믿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쌓아 올린다. 그러나 노력은 보상이 되지 않고, 성실함은 외려 착취를 부르는 신호가 된다.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찌르는 지점은 그녀가 끝까지 성실했다는 데 있다. 성실함이 미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되는 순간, 불안은 커진다. 멈추는 즉시 삶의 기반이 무너질 것 같은 불안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흑백요리사>의 백수저들에게 열광한 이유는 그들이 증명한 '성실의 결실'이 현실에서는 너무나 희귀한 광경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면 다 잘될 거야"라는 위로가 때로 독설처럼 들리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성실한 이들에게 더 지독한 성실을 요구하는 무책임함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 역시 답을 해야 하는 질문을 해본다
왜 이렇게까지 성실해야 했을까.
왜 성실한 사람일수록 더 불안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