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의 불안 (2)

설명하지 않는다

by 퐝클리

오늘날 사회에서 가치는

점점 더 짧은 언어로 설명된다.


그 평가는 대체로 빠르고, 효율적이며,

별다른 악의를 동반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방식이 언제부터인가 나 자신을 대하는 기준으로까지 내면화되었다는 점이다.


시간은 투입 대비 결과로 환산되고 노력은 효율로 번역된다.

이 과정에서 설명이 필요한 요소들.

준비의 시간, 판단의 누적, 감정의 마모는

자주 계산에서 제외된다.


설명의 비용은 얼마일까

맥락을 제시하고, 전후를 정리하고

이유를 말하는 일은 쉽게 비효율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설명하는 사람은 종종 ‘과한 사람’이 되고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상황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과는 통제되지 않으니 과정을 통제해야 한다. 그럼에도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유리해진 이유는 판단은 빨라지고 책임은 흐려지기 때문은 아닐까. 이율배반이다


“그냥 그렇게 됐다”는 말은

논쟁을 종료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문장이다.

이 사회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는 사람은

대개 말을 줄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정도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은

배려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설명하지 말고 수행하라는 요청에 가깝지 않은가


돌아보면 나 역시 스스로의 시간과 노력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여겼던 순간들이 있다. 상황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설명을 줄이고 기준을 낮추는 선택은

갈등을 줄였지만 그 선택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

설명이 사라진 자리에 피로가 남는다.

명확한 부당함이 없는 상태에서

반복되는 소진은 대개 이렇게 형성된다.


문제는 누가 나를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떤 언어로 설명하고 있는가에 있다.


설명하지 않는 사람이 유리해진 사회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너무 간단한 말만 허용해 온 건 아니었는지 되묻게 된다.

말을 줄이는 법은 이미 충분히 배웠다.

이제는 그 반대의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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