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유가 없다

쓰지 못한 것들

by 퐝클리

새벽에 생각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내 속에 책들이 들어 있다.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들이

구분 없이 섞여 있다.

정리해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아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마음은 있다.

없어서 못 쓰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이

자꾸 늦어진다.

손에 잡히기 전에

이미 다른 생각으로 흘러가 버린다.


낮에는 괜찮다.

할 일도 있고,

해야 할 말도 있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하루를 넘길 수 있다.

그 사이에

속에 들어 있던 것들은

조용해진다.


요즘은

하루를 마치고 불을 끄면

생각들이 다시 살아난다.

뉴스를 끄고,

화면을 뒤집어 놓고,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되면

그제야

내 안에 남아 있던 말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새벽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썩 좋은 일이 아니다.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굳이 들춰보게 된다.

이미 지나간 문장들,

끝내 쓰지 않은 말들,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마음들.


가끔은

아무 맥락 없이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엄마.


부르려던 건 아니다.

위로받고 싶다는 뜻도 아니다.

그냥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던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쓰지 못한 문장들 사이에 있다.

그게 재능인지,

습관인지,

미련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로.


이런 생각들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굳이 이유를 붙이지는 않는다.

설명하려는 순간

이 상태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유가 없어.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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