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내가 내 삶의 1부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깨달은 건 흘려버릴 수 없는 말의 힘을 가진 언론인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이력 관리를 참 잘하셨네요.”
그 문장은 내가 아직 달리고 있다고 믿고 있던 삶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 말처럼 들렸다.
하지만 오늘 할 이야기는 따로 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한 말이 있다.
“넌 할 수 있어.”
믿음의 말처럼 들리지만, 내게는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말이다. 나도 피상적인 말로 답했다.
“잘 버텨. 밖은 전쟁터야.”
“앞으로 뭐 할 거야?”
참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물음들.
사람들은 모두 인생 계획이 잡혀 있는 걸까. 아니면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만 이 질문이 향하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사람들은 내게 계획이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아본 걸까.
기름에 튀겨지는 듯한 연말과 연초를 보냈다.표정은 바삭하게 말라버려 속내를 감췄다. 사람들의 질문을 통과하며, 매 순간 나는 나에게 실망 중이었다.
한창 일할 때는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늘 컸다.
팩트를 확인하고, 사실관계를 취재하고, 그걸 토대로 질문을 쓰고, 앵커와 조율하는 하루하루가 벅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는 적어도 해야 할 일이 명확했다.
지금은 시간이 온전히 내게 왔는데,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분명 스스로 선택한 일인데 문득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선택과 방치가 이렇게 비슷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이 시간을 잘 버텨봐”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네본다.
단 한 번도 버티지 않은 순간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불안정한 직업을 택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과 오래 감정의 모서리를 세웠고, 늦은 나이에 일을 시작한 나에게 유난히 모질었던 동갑내기 선배들이 있었고, 하룻밤을 새고도 또 새워야 했던 밤들이 있었고, 영상을 초 단위로 쪼개 보던 새벽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한 이들의 비법이라며 “그냥 하면 된다”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그냥’은 없었다. 매 순간이 기를 쓰고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낯설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고, 해야 할 목록도 주어지지 않는 이 시간 앞에서 나는 내가 약해진 건지, 아니면 처음으로 멈춰 서 본 건지 분간하지 못한다.
다만 이 불안이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방향을 잃은 사람만이 아니라, 너무 오래 달려온 사람에게도 길은 이렇게 갑자기 멈춰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