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두고 남은 질문

명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by 퐝클리

프리랜서 작가로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난 뒤, 내내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 있다.

프로그램을 하지 않고 있는 나는 여전히 방송작가일까.


명함 한 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은근히 열망해 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나니, 인생이 마치 주말을 일로 다 보내고 다시 한 주를 시작해야 하는 사람의 월요일처럼 느껴졌다. 쉼이 있었지만, 시작은 더 무거워졌다.


순간적으로 그만둔 일로 인해 더 많은 질문을 받게 됐다. 누군가에겐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고, 또 다른 사람에겐 번아웃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에겐 다시는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설명은 늘어났지만, 그 말들 중 어느 것도 완전히 나를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자조적인 생각이 든다.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방송작가가 과연 작가일까. 말을 쓰는 사람인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글을 쓴다면, 그건 그저 자기만족일 뿐 아닐지. 조직 안에 있을 때는 하지 않던 질문들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점점 나를 향한 질문을 늘려가고 있다.


엘런 러펠 셸은 『일자리의 미래』에서 ‘일자리’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job의 기원을 짚는다. 16세기 이 단어는 도둑질하거나 속이는 일,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빼앗는 야비한 형태의 생계를 뜻했다. 산업화 시대에 이르러서야 job은 ‘일(work)’을 포함하는 개념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은 ‘일자리’의 부분집합으로 밀려났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일과 일자리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나는 방송작가일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내가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아직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려놓은 것이 일 자체가 아니라, 일자리를 증명해 주던 구조였다는 사실을 아직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아직 이 질문들에 답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일을 그만둔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생각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다음에 써야 할 것은, 내가 잃었다고 믿었던 것과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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