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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그러나, 뒤에 쓰고 싶은 것

예감

<그러나, 뒤에 쓰고 싶은 것>

예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땐

곰곰 생각한다

무슨 실수를 저질렀나


잘못은 단지

보고 싶다는 것뿐


너를 그리워할 때야

비로소 내가 된다

그것이 마침내 사랑이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있다는 사실


비로소 내가 되면

마침내 사랑이 오는가

마침내 사랑이 오면

비로소 내가 되는가


새파랗게 돋아난 새싹 같은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

달큼하고 서늘한 여름 과일 맛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가을 태풍이 오기 전에

땅으로 올라온 지렁이를 밟았다

발이 없는데도 발버둥 치는 꿈틀거림을

머리끝까지 아찔하게 느꼈던

최초의 날과

눈 오는 밤에 개가 컹컹 짖으며 뛰는

풍경을 처음 목격한 때부터


어쩌면 예감했을지도 모를 일

아마 짐작하고 있었을지 모를 일

너에게 사로잡히는 순간이

내 생에 어느 때인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슬픔과 환희 사이를 오고 가며

나는 너를 훔치고 놓아버리기를 반복하고


늦은 밤

목을 타고 흐르는 맑은술을

어떤 얼굴을 보고 싶어 하며

혼자 마시는 밤이

내게도 찾아오는 줄 몰랐지

미처 몰랐었지


>> 이것은 작년에 쓴 시이다. 딱히 잘 썼다고 생각해서 올리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쓴 시들 중에서 가장 낫다고 생각되어 올린다.


'그러나'는 부사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면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라고 나온다.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러나'의 의미를 잘 알고 있으며, 많이 쓰고 있다.


 이번 주제가 '그러나, 뒤에 쓰고 싶은 것'이라고 해서 무작정 낙관이나 희망에 대해서 적고 싶지는 않다. 나는 시련을 이겨내고 고난을 견디고 역경을 극복해서 성공하거나 우뚝 선 승자의 이야기에 신물이 난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그렇다고 굳이 반대로 적어야 될 필요가 있을까? 예를 들자면 행복하게 남 부러울 것 없이 걱정 없이 잘 살던 이들에게 갑자기 찾아온 낯선 불행, 질병, 사고, 비극 같은 것에 대해서.  이런 생각은 든다. 대책 없는 낙관과 희망은 문학이 될 수 없지만 갑자기 찾아온 낯선 불행은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오래전부터 나는 문학이 좋았다. 아마 내게 문학은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십 대 소녀였을 때는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고 간질이는 느낌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20대에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마구 퍼붓고 쏟아지는 무언가였다. 3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지금 나에게 문학은..? 문학은, 잘 모르겠다. (이제 남은 건 가을과 겨울인 건가?)


나는 내가 앞으로도 계속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그 대상이 문학이었으면 좋겠고. '그놈의 문학병'이라는 말도 들어보았지만 그래도 나는, 병이라고 해도 아직 문학이 좋다.


되도록 나는 문학하는 사람이고 싶고, 문학이 아닌 문학 나부랭이라도 흉내 내 보는 사람이고 싶고, 그러다가 예술가가 되어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쓰는 문학이 대책 없는 희망이나 낙관이 아니면 좋겠다. 지금은 미흡하고 미약하다. 그러나, 나는 계속 쓰고 싶다. 누군가에게 갑자기 찾아온 낯선 불행을.  다른 많은 이야기를, 인물을, 감정을... 솔직히 자신은 없다.


그러나, '쓰고 싶다. 쓸 것이다.'다. 문학이 언제 자신감을 바랐던가. 나는 문학이 내게 자신감을 바라지 않는 것이라서 좋았고, 그 덕에 지금은 자신감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자신감을 잃어버린 이런 시기에도 문학에 적당히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그 점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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