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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별 Jun 15. 2024

내가 사랑한 산책길

산책에 대하여

<내가 사랑하는 산책길>

내가 사는 동네는 길이 좁고 보도가 울퉁불퉁해서 산책하기 좋은 곳은 아니다. 마트나 상점, 학원과 학교, 아파트와 병원 등이 과밀한 지역이라 조금만 걷다 보면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팔이 스치지 않도록 조금 비켜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시간이 날 때마다 걸으라고 한다. 살을 빼야 한다고. 건강 관리를 하라고. 여름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나니 다이어트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물론 공원도 있다. 하지만 그 공원마저 넓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마음 놓고 걷거나 뛸 수가 없다.


아니, 이건 솔직히 핑계다. 나는 걷는 것과 뛰는 것, 춤추는 것, 공놀이를 하는 것, 탈 것을 타는 것 등 어쨌든 몸을 움직이는 것 모두를 싫어한다.  내가 아는 부지런하거나 활동적인 어떤 사람들은 이 좁은 동네에서도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즐기거나 러닝을 한다.  킥보드를 타거나 줄넘기를 하거나 훌라후프를 돌리고 배드민턴을 한다. 농구도 한다. 그런 걸 다 하면서 헬스를 다니거나 필라테스도 다닌다. 수영을 하거나 탁구도 친다.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그렇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솔직히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나는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한다. 편도 15~20분을 걸으니 왕복이면 하루 3~40분 정도 걷는 셈이다. 그게 내 하루 운동량의 최대치다. 먹고살기 위해서, 생존과 생계를 위해서 걸어서 일터로 향하고 휴식을 위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여행도 가지 않는다. 엄마 말로는 내가 4살, 5살이었을 때까지는 아주 활달하고 활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거야 내 기억에 없는 일이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고. 엄마 말로는 그때의 나는 잘 뛰어다니고 꺅꺅 소리 지르면서 달리고 까르르 웃으면서 품에 안기는 아이였다고. 하긴, 그러고 보니 6, 7살 때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 때 이웃집 아이들과 세발자전거 경주를 하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시합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내가 아는 나는 걷거나 뛰거나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더 이상 걷거나 뛰거나 춤 추지 않는 사람이다. (춤... 하니까 초등학교 6학년 소풍 때 친구들이랑 S.E.S 노래로 장기자랑 했던 거 생각나네.)


어쨌거나 작가들의 작가라는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라는 책도 있고(나에게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읽어 보지는 않았다.), 특히 작가들 중에는 산책을 즐기는 인간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산책이 건강에 좋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왜 즐겁다는 걸까 마음으로는 모르겠다.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오히려 건강에 안 좋지 않나.  


그래도 몇 년 전에 읽은 한정원의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 2020)이라는 책은 너무 좋았다. 너무 좋아서 마구마구 알려주고 좋다고 소문내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 책은 좋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무리 책을 안 읽는다고 해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의 좋은 책은 소문이 은은하게 퍼지기 마련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좋은 글을 알아보는 눈이 점점 높아진다. 그런데 그 책 어디 갔지.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이 동네가 길이 좁지 않다면, 인도가 울퉁불퉁 튀어나와 있지 않다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널찍한 길이 있다면, 아침이든 낮이든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내킬 때 여자 혼자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안해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면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는 30분 이상 산책을 하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하다.


아니다. 솔직히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왜 산책을 하지 않는 거지?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아서라는 게 정말 이유의 전부인가? 동네가 길이 좁고 좋지 않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모종의 이유가 또 있을 것도 같은데 아직 모르겠다. 막상 밖에 나가서 조금 걷다 보면 기분도 전환되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이유로 아직 내가 사랑하는 산책길은 발견하지 못했다. 산책은 하지도 않는 사람이 산책에 대해서 할 말이 이렇게 많은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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