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운이 나서 밀린 집안일들을 하나씩 해치우고 있다. 어제 세탁한 수건들은 뽀송하게 말라서 개서 욕실 수납장에 정리했고, 이어서 옷들을 세탁하는 중이다. 밥을 먹고 설거지도 미루지 않고 제때 했고, 분리수거도 했다.
어제부터 이희주의 장편소설 <나의 천사>를 읽고 있다. 소설이 독특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더 읽고 싶은 매력이 있다. 아주 영리하게 잘 쓴 소설이다. 1부에서 2부 초반부까지의 내용은 어디선가 읽어 본 듯했다. 아마 릿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작가가 그때 쓴 이야기를 이어 장편을 완성한 거구나, 싶었다.
어제는 모처럼 일기를 썼다. 요즘 내가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짧게 끄적였다. 일기를 쓴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하지만 일기를 쓰면서 뭔가가 달라지기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 갖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사람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엇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나도 더 젊고 어렸을 때는 그런 것 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요즘에는 간절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과, 간절한 게 없는 사람은 확연히 다를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사람들은 때로는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기도 하니까. 하지만, 간절한 마음 자체에 기대어 살기도 하는 거고. 그렇지만 앞으로도 한동안은 종교를 가져볼 생각은 없다 여전히.
지루한 장마가 끝나려나 싶게 오늘은 해가 쨍쨍하다. 그제 저녁에는 퇴근하고 나오다가 길바닥에 떨어져 뒤집혀 죽어 있는 매미의 사체를 하나 봤다. 몇 초쯤 골똘히 그 자리에 머무르며 생각했다. 매미의 이른 죽음 앞에서 명복을 빌고 싶었다.
걱정거리 투성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잘 살아가고 싶다. 올해 겨울에는 누구보다도 삶을 정성스럽고 어여쁘게 사는 내가 되고 싶다. 그런 겨울을 위해서, 겨울을 기다리면서 여름을 견딘다. 하지만 여름은 견디는 것만 아니라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그 사실을 올해 들어서야 처음으로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