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를 봤더니 '넌 대기업 못 간다'라고 했다

10년 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냐면

by Serena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2012-14년도쯤 내가 대충 대학교 1-2학년 때 일이다.


나는 홍대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취업보다는 창업에 더 흥미가 있었다.

같이 창업을 해보자며 이런저런 일에 함께 관심을 가졌던 친구가 있었고 또 때마침 그 친구가 사주, 타로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가자는 말에, 선뜻 함께 나서 홍대 앞 수많은 사주카페 중 하나에 방문했다.


아주머니 선생님(?)이 우리 사주를 봐주셨다.

별 다른 특별한 얘기는 없었는데, 우리가 함께 창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며 약간 혼내듯이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들 말고. 취업 준비 열심히 해!"


"너네 사주로 사업은 무슨! 친구 너는 그나마 좀 낫지, 세레나 너는 대기업도 어려워!"


"중견기업 가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들 말고 공부랑 취업 준비나 똑바로 해!"


지금 돌이켜보면, 사주를 보러 가기 전까지 생전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무궁무진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주에 대해, 본인의 해석을 말한 것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말들이었다.


물론 웬만한 것에 좌절하는 성격이 아닌 나이기에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대기업? 그까짓 게 뭔데? 그리고 아줌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이런 생각이 함께 들기도 했다.




그 뒤 실제 나의 취업은 어떻게 됐을까?


나는 기계공학과로 입학했으나 단 1명 뽑는 전과생에 합격해 경영학과로 전과했고 창업과 스타트업, 중소기업 인턴을 지나 BGF리테일에 입사했다. 100명이 넘는 동기들과 함께 영업관리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중 단 1명으로 뽑혀 마케팅팀으로 스카우트되었고 지금은 신세계 백화점부문 계열사로 이직하여 본사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네이버 기업 정보로 보자면, BGF리테일은 중견기업이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대기업이다.





대기업에 와보니, 왜 넌 대기업 못 갈 거다 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이게 긍정적인 성격 때문인지 자존심 상해서 그렇게 생각하기 싫었던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부모님은 풍족하지 않은 환경이지만 주말 밤낮없이 몸 상해가며 일하셨고, 나와 우리 언니를 부족함 없이 뒷바라지해주시려 최선을 다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감히 가난하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가난했던 게 맞긴 하다.


상가 단칸방에서 네 가족이 함께 지내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겨우 치킨 시켜 먹고 태풍이 오던 여름밤에는 강아지를 끌어안고 무서움에 밤을 설치고

상가 단칸방에 딸려있는 주방 바닥에서 닭 내장 부속물을 검은 봉지에서 꺼내 손질하던 아버지를 보며, 그게 뭐냐고 물어봤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가난했기에 어릴 적 학원도 부모님을 졸라서 1-2개 정도 겨우 다녔고, 학교도 대기업에서는 뽑지도 않는다는 커트라인으로 생각하는 인서울 대학 정도로 입학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 회사에서 종종 들리는 말이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는 몇 천만 원에서 몇 억이 들어가는 유학은 필요 없다고 큰소리쳤다.




심지어 나는 대기업에 꼭 들어가겠다는 큰 꿈을 가지거나 철저한 취업준비를 하지도 않았다.

해본 적도 없는 대기업에서의 '일'하는 것이 목표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아이러니한 현상 같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따금씩 성공을 말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 미래에 대한 걱정보단, 내가 꿈꾸는 미래가 이미 정해진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라

-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해서 그냥/치열하게/타인을 의식하지 말고/본인을 위해서 해라

- 목표를 정하고 이뤄질 것을 의심하지 말아라


돌이켜 보니 나는 이 말들을 실천하며 살았다.


기계공학과에 가보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몇 명을 뽑는지와 상관없이 무조건 전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명을 뽑는 줄 알았다면 무서워서 신청도 못했을 것 같다.)


경영학과에 와보니 마케팅과 인사 전공에 관심이 생겼고 창업하는 선배와 동료들도 보게 되었다.

비즈니스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출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마케팅인 블로그/유튜브를 운영하고

창업에도 도전하고 스타트업에도 취업하여 몇 개월을 다녀 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니, 비로소 대기업에 입사해서 시스템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을 가기 위해 취업 준비를 했다. 당연히 인사/마케팅팀에 가고 싶었지만

애초에 뽑는 회사가 정말 별로 없었고, 나보다 더 좋은 대학과 스펙을 가진 경쟁자들도 많았다.


그러다 운 좋게 BGF리테일 영업관리직을 알게 되었다.

유통은, 보통 영업관리직을 많이 뽑고 거기서 인사/마케팅/MD 같은 팀으로 발령이 나는 구조라고 주워 들었다.


BGF리테일에 합격하며, 2년 안에 마케팅팀으로 발령 나겠노라 하고 혼자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근무를 해보니, TO가 그렇게 자주 나는 환경도 아니고 2천 명이 넘어가는 임직원들 사이에서, 연차/연령/성별/이력이 모두 딱 맞아떨어져서

내가 원하는 팀으로 발령 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달을 뿐이었다.


그리고 영업관리직은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을 하면 할 수 록 점주를 대상으로 도움이 아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같은 상황도 많이 겪었다.


그렇게 퇴사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어느 날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세레나 주임님, 본사에 와서 마케팅팀 회의에 참석해 주셔야겠어요."


무슨 주임 따위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마케팅 팀장/주무에게 면접을 보는 자리였고,

나는 대학교 때 취업이 아닌 나만의 작은 도전들이었던 블로그/유튜브 운영, 스타트업 경험 덕분에

BGF리테일 대표가 지시한 인플루언서 TF 실무자 자리 제안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6개월 간의 TF 업무로 갑작스러운 전환 뒤,

본사 마케팅팀의 일원으로 본격적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느덧 회사를 만 7년 정도 다닌 K-직장인이다.


최근 1년 정도, 갈 곳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의 다음 스텝은 뭘까?

40살의 세레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갈증은 어떤 것에 대한 것일까?



직장 생활을 해보니 내가 꽤 잘하는 부분도 있고

너무 환멸감이 들어서 버티기 힘든 부분도 있다.


분명한 건 이제는 또 다른 도전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두 달 전,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