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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트리 Feb 19. 2021

손으로 그리는 소리

 내 손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수어그림_지금,여기>  *그림 원본의 해상도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손으로 그리는 소리 





내 손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모양도 이상하고 통통하고 크고 투박하기 그지없었다. 친구들과 다르게 큰 손이 어쩐 지 모르게 어색하고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을 가진 사람들의 손에 시선이 자주 갔다. ‘어쩜 저렇 게 가늘고 부드럽고 하얀 손을 가질 수 있지?’ 내가 가질 수 없는 손을 가진 사람들이 나는 부러웠다. 다시 내 손을 바라봤다. 여전히 울퉁불퉁하고 크고 투박했다. ‘내 손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예쁜 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 지?’ 내 손이 매력적일 수 있을 순간에 대해 매일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대화를 나누던 중 뜻밖의 이야 기를 듣게 되었다. 


“지후야, 네가 손을 이용하여 말하니까 대화에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아!” 


세상에! 손이 부끄러워서 감추어두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가 자각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손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고 있었다.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너무나도 작았는데 손이 바라보는 시 선은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나 보다. 


그 이후로 손끝의 시선을 쫓아갔다. 미처 마주할 수 없었던 무언가가 내 손안에 있을 것 같단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사진과 동영상에 찍힌 손의 모습들은 꽤 발랄하고 재미있고 자유로워 보였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나를 움 직여보기로 했다. 관찰자의 시점으로 본다면 스스로가 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손끝의 시선을 쫓아가다 보니 내 손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다. 사람을 웃기는 글을 적는 일, 슬픔에 잠긴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 솔직한 이야기를 공유해 공감을 주는 일 등이었다. 내면에 있는 생각, 욕망, 감정을 표 현하지 못해 삶이 답답했는데, 손은 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내가 그토 록 미워했던 나의 손이 내게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가 용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손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화언어를 통해 손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손 소리꾼’이 되어 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나의 손은 시인이 되었다가, 엄마 손을 잡는 딸의 손이 되었다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손이 되었다가, 수 어를 이야기하는 수화가 되었다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퍼포먼스의 손이 되었다가, 사랑하는 이를 안아주는 손이 되었다. 또한 손은 내게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선물해 주었다. 다채롭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손이 나를 이끌어 준 것처럼, 그런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겠노라 다짐했다. 


어느덧 나는 손으로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손이 준 용기 덕분에 나 자신과 관계가 성장했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개성 있는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이다. 




글_지후트리
농인의 모어인 수어(수화언어)를 기반으로 그림, 퍼포먼스로 이야기를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그리는 소리, 손으로 보여주는 말 등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2w Magazine Vol.8 <모자람의 쓸모>_기고글 ' 손으로 그리는 소리 '


2w Magazine 은? 

Writing Women. 여성 에세이 작가들이 주축이 되어 창간한 에세이 전문 월간 웹진입니다. 매달 전자책으로 발간되며, 여러 작가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만들어지는 독립잡지이기도 합니다. 글 쓰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이자, 즐거운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연대하는 따뜻한 커뮤니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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