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월간에세이> - 그림이 있는 에세이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견뎌내 온 인생의 순간들은 하루살이의 삶으로 반복되어 왔다. 그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시절인연들과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어렸을 적부터 현재까지 친구들과 20여 년 넘는 우정을 지켜내 온 내 남동생과는 반대로 내겐 그런 친구들이 거의 없다. 때론 부러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각자만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의 그림자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걸 좋아할까?’ ‘무엇을 할 때 즐거울까?’
사색의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면서부터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도, 반추해 보자면 아빠의 부재가 나를 성장시킨 큰 이유였을 것이다. 가장의 부재로 인해 새로운 가장이 된 엄마. 그녀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었다. 그런 그녀의 보살핌으로 자라난 나와 내 동생은 베풀 줄 알고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이로 성장해 왔다.
남동생이 고3이었던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방에 나란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내게 고백을 해왔다. “누나, 나는 누나가 내 누나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견뎌 내지 못했을 거야.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고 말이다. 그 말들을 내뱉는 동생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도 서로 흐느끼고 있음을 직감했다. 삶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남동생의 꾹꾹 눌러 담은 진심 어린 말 한 마디가 서로를 지탱해 줄 힘이 되어 주었다.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용기가 생긴 나는 과감한 결심을 하게 됐다. 예술을 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버린 것이다.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에 잠시 균열이 생기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2년을 방황했다. 예술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니, 돈을 벌다 보니 주객전도가 된 것이다. 내가 걱정되었던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그녀의 한마디에 나는 또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뭘 하고 싶은 거니?” 그래. 도대체 나는 무엇을 하고자 이곳에 있는 것일까. 30분 동안 말없이 우는 딸의 통화 너머를 엄마는 묵묵히 지켜주었다.
인생의 전환점을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종이를 펼치고 마인드맵을 그렸다. 가족, 사랑, 예술 등에 관련된 키워드가 나왔고,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가족들에게 받은 사랑을 되돌려주는 예술을 이어 나가자고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한쪽 청력을 상실한 엄마, 아버지처럼 우리를 돌봐주었던 외삼촌의 화재 사고로 인한 오른팔 소실, 통통하고 큰 손이 콤플렉스였던 나의 손. 이 세 사람의 교집합이 손이었고, 손으로 하는 언어가 바로 수어였다. 수어라는 언어에 감정의 색을 담아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독학과 수어 교육원에서 공부를 하며 수어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림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긴 것이 장점이 되어 퍼포먼스 영역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했다.
나의 손이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제법 용기 있고 솔직하고 아름다웠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숨김없이 과감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듯했다. 진한 감동이 가슴 깊은 곳에서 꿈틀거렸다. 콤플렉스라고만 생각했던 손으로부터 나는 큰 가르침을 얻었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은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듯하다. 어떤 결과에서도 결국 뭔가를 배우는 존재가 된 나. 손이 준 용기 덕분에 나 자신과 관계가 성장했고, 어렸을 적 나의 희망이 되어주었던 엄마와 남동생 덕분에, 그렇게 나는 자라나서 예술을 하며 누군가의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개인전 <손으로 만든 놀이터 展>외 8회 이상. 다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 참여. 수어 에세이 <손 소리와 산책할래양?>(2022) 출간. 문화체육관광부 유튜브 수어 채널 자문 및 심사위원.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