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편린들

by 지후트리
지후트리_휴식.jpg 수어그림 <휴식> / 지후트리 / 2018



시간의 편린들


아직까지 잘

살아남아 있다.


살아남아 여생을 이어나가는 사람들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마음의 부채 방을 만들어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여러 가지의 사건 사고와 병마들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자들은 시간의 편린 속에서 종종 머무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도 그런 편린의 시간을 피할 길은 없었다.


나의 엄마는 37세에 남편을 잃었고, 나와 내 동생은 초등학생인 시절에 아빠를 잃었다. 위태로워진 시간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지탱하며 앞날을 도모해야 했다. 우리 셋은 제법 씩씩하고 끈끈했다. 태생적으로 긍정적인 사고관을 가진 엄마가 그 역할을 건강하게 수행하여 주었다. 긍정이 내게도 스며들었다 느꼈던 일화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진입할 때쯤이었다. 각종 임원도 도맡고 온 힘을 다해 학교 활동을 성실히 하고자 했던 작은 어린이에게 어떤 어른이 무례함을 쏟아부었다.


" 쟨 과부 딸이라더라~ 우리 애들이랑은 안 놀았으면 좋겠네 "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콩닥거렸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했다.


' 나도 아줌마 애들이랑은 놀고 싶지 않아요! 내가 아줌마 애들보다 훨씬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해요! '


개의치 않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이뻐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나의 엄마와 가족이 있으니까 그걸로도 충분하다는 만족감으로 풍요로워진 내 마음으로의 시선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남편을 잃은 엄마의 나이가, 작은 어린이에게 무례함을 쏟아부은 어른의 나이가 되었다. 시간 참 빠르다.


올해 아빠의 기일을 치르다 엄마는 몸살에 지독한 독감도 걸리고 말았다.

그녀의 처연한 몸짓 속에 속절없는 안타까움과 사랑이 동시에 느껴져 안쓰러웠다.

엄마는 충분했다고, 할 만큼 했다고, 이만하면 이제 엄마 스스로만을 위해서 살아도 되지 않으냐고 나와 동생은 엄마를 타일렀다. 수많은 세월 동안 무례한 어른들 속에서 우리들의 방공호 역할을 수행하여 준 엄마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나와 내 동생은 다짐했다. 돌아오는 아빠 기일부터 가족들끼리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이다. 물론 엄마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지만 그녀도 마지못해 동의해 줄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는 엄마랑 최대한 많은 새해 인사를 나누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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