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채우는 사랑스러운 'ㅁ'

by 지후트리
수어그림_미음.JPG 수어 그림 < 지문자 'ㅁ'바나나> / 2016 / 지후트리



마음을 채우는 사랑스러운 'ㅁ'


단어 수집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아는 언어만큼 다채로운 세계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수어를 공부할 때 한국어도 같이 들여다본다. 언어를 수용하는 능력치가 좋아야 단어를 마주했을 때 다양한 시선과 해설이 가능해진다. 화자 중심의 언어이므로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 이해도에 따라 적절한 언어 구사 능력이 발휘해야 한다.


수어를 배우다 보면 지문자를 접하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들이 자음 모음을 공부하는 것과 같은 입장인 것.


*지문자 란?

지문자는 수어에서 고유 명사나 일반 단어를 표현하기 위해 한글 자음과 모음의 모양을 손으로 본떠 만든 기호입니다. 수어에 없는 단어나 정확한 이름, 숫자 등을 전달할 때 보조적으로 사용하며, 수어 소통의 기초가 됩니다.


여러 자음 모음 중에 'ㅁ' (미음)을 손동작으로 표현할 때 손근육을 움직이는데

익숙한 동작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이 동작을 한 내 손을 보고 있으니 재밌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껍질을 절반 정도 벗겨낸 한 입 베어문 바나나'


오일파스텔을 가져와 상상되는 이미지를 실체화시켰더니 귀여운 그림이 나를 마주한다.

귀여운 사랑의 형태를 목격한 느낌이다.

ㅁ으로 시작하는 마음을 채우는 사랑스러운 단어 30개를 수집하기로 작정했다.


마음, 미소, 믿음, 매력, 몰입, 만족, 만남, 명랑, 묘미, 마법, 무지개, 머금다, 말랑말랑, 매끄럽다, 몽글몽글, 뭉게뭉게, 미리내(은하수), 마중, 밀어(연인끼리 속삭임), 마중물, 매일, 모두, 머무르다, 맑음, 만끽, 무르익다, 맞이, 묘사, 망울, 매듭


모두, 사랑의 시간들을 가득 머금고 있다.


며칠 전 사랑의 시간을 가득 머금게 된 '마음'을 느끼는 일화가 있었다.


독립한 지 17년 차.

엄마는 아직 나의 자취방과 만나보지 못했다.

서울에 엄마외갓집행사가 있어 방문 예정인데, 딸 집에 하루 머물러도 되는지 정중하게 부탁해 왔다.

조금 긴장된 마음이었지만, 엄마 이모가 와서 편하게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집으로 이사했기에

그녀의 부탁을 수락했다.


몇 년 묵은 잔소리로 집안이 점철화 될까 우려스러워 엄마와 이모의 시선이 닿을 곳 위주로 때 빼고 광을 냈다. 그녀들과 서울 나드리를 마치고 집으로 함께 귀가했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도어록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어 집 소개에 나섰다. 집안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며 까르르 웃으며 룸투어를 시작한 그녀들.

생각보다 집이 넓어서 놀란 눈치다. 눈알을 열심히 굴리는 거 보니, 언제 놀러 오면 될지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같다.


" 봄, 가을로 놀러 오면 한강도 보러 가고 걸어 다니기 좋겠다 "

예상을 적중했다.

잠옷으로 환복 하고는 거실에 모여 앉아 룸투어 소감을 서로 공유했고, 합격목걸이를 받아냈다.

그녀들은 고단한 하루의 마무리를 치맥으로 결정한 듯했다.

"지후야, 치맥이나 하까? 어서 주문 좀 해보렴"


그녀들은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합격목걸이를 받고 환상적인 치맥 타임 후 거의 혼절하다시피 잠에 들었다.

다음날,

전남 광양, 순천으로 가야 하는 그녀들의 한정된 자유시간으로 인해 아침 일찍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다 커서 나도 이제 장보기 잘하는데 엄마와 이모한테는 돌봄이 필요한 애기인가 보다. (난 엄마랑 이모보다 키도 큰데, 그저 그들 눈엔 큰 아기 일뿐ㅋㅋ) 서울에서의 둘째 날 첫 일정은 지후의 한 달 먹거리 장보기였다. 가장 가까운 마트로 안내해 달라 신다. 한파의 칼바람을 맞으며 마트에 도착했다. 호기롭게 장바구니를 들어 내게 건넨다. 필요한 거 주워 담아보란다.


" 지후야~ 시금치 나물 해 먹을 줄 알지? 미역도 사서 삶아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별미야. 초장 없나? 그것도 담으렴. 어머~ 김도 사야지, 계란 한 판도 골라 담아봐~ 동물복지 계란 이거 괜찮네. 집에 과일이 없던데? 귤 한 박스도 골라야겠다. 두부 두부 지후야 두부~ 두부 2개는 사야지~ 대파 한 단 필요하지 않나? 굵은 거 말고 자잘하고 튼실한 걸로 골라, 자주자주 음식 해 먹으려면 지후야 샴푸 다 떨어져 가더라 너 미쟝 센터 좋아하잖아, 샴푸도 담으렴 "


먹어봤으면 하는 내 취향일 것으로 판단되는 식료품들 선택해 장바구니에 옮겨 담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어제 룸투어를 하며 내게 필요한 것들을 스캔해 둔 것 같다. 한 손으로 들고 있던 장바구니는 어느새 두 손으로 들기도 역부족인 상태로 물건이 쌓여갔다.


" 어차피 이거 배달시키면 되니까 이거 배달 예약하고 밥 먹으러 가자 콩나물국밥으로 알아봐 "


한 달 먹거리 장보기를 끝내주게 마치고선 서울역 근처 콩나물국밥집으로 가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야 하는 관계로 우리의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다. 아이파크몰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던 터라 조금 걷다가 발견한 안마기가 그녀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과감하게 먼저 앉은 이모 안마기부터 결제해 주고 중간에 앉은 엄마 안마기 결제 후 나도 안마기에 앉았다. 셋이 나란히 안마기에 기대어 앉아 눈 내린 아이파크몰 정원뷰를 보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15분의 치유시간을 끝내고, 빵순이 그녀들을 위해 카페를 방문했다. 빵 없는 카페를 선호하지 않는 그녀들. 앞으로 그녀들과 함께 하려면 서울에 맛있는 빵을 만드는 카페를 알아둬야겠다. 사실 그녀들은 이제 내가 없이도 내 집에 방문할 계획에 있는 것 같다.


" 지후야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오는 날이 있으면 비번만 알려줘 잘 있다가 갈게 "

집이 제법 마음에 든 눈치다. 성공적인 룸투어와 한 달 먹거리 장보기. 이만하면 충분히 좋은 시간 보냈고 고마운 시간들인데, 이모랑 엄마가 주섬주섬 가방을 뒤지더니 이내 무언갈 건넨다.


" (5만 원권 2장을 건네며) 지후야, 맛있는 거 사 먹어 "


홀로 서울살이 하면서 학연 지연 없이 커리어를 쌓아 올려가는 내가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했다. 앞으로 더 잘될 것 같아 미리 투자하는 것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아 넣으라 한다. 그녀들이 다녀간 지 5일이 지나지 않아 아직 그녀들의 온기가 집안 곳곳에 머물러 있어 좋다. 몽글몽글한 마음이 전해져 입가에 자주 미소가 지어진다.


영자이모, 소의여사님 봄, 가을에 언제든 놀러 와 양. 한강 가자고~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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