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방 메일을 읽으며 나는 호피 츄리닝을 세탁기에 넣었다. 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 리움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굴렀던 나의 무늬들이 거품과 함께 뒤섞이기 시작했다. 2시간 30분의 치열했던 몸짓, 그 현장의 땀과 긴장이 세제 물에 녹아내리는 동안 휴대폰 액정에는 여전히 그 문장이 선명하게 떠 있었다.
"오디션 과정에서 보여주신 진솔함과 용기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불합격 통보 치고는 지나치게 따뜻하고, 평론 치고는 지극히 사적인 이 문장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탈락인데 감동이라니, 이 무슨 형용모순인가. 하지만 세탁기 유리창 너머로 뱅글뱅글 회전하는 호피무늬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 결과야말로 내가 던진 예술적 질문에 대한 가장 솔직한 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날, 세계적인 아티스트 티노 세갈의 작품 < This Is So Contempory>를 보여줄 '해석자'를 뽑는 오디션장에 가며 나는 망설임 없이 호피 츄리닝을 집어 들었다. 누군가는 가장 단정한 셔츠를 고르고, 누군가는 무채색의 연습복을 준비했을 그 엄숙한 자리. 하지만 나는 리움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정적에 기분 좋은 균열을 내고 싶었다. 예술은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이어야 한다고 믿기에, 박물관 같은 그곳에서 '살아있는 조각'이 되어야 한다면 나는 가장 길들여지지 않은 나만의 야성을 입고 싶었다. 그것은 나의 자부심이자, 나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나름의 전투복이었던 셈이다.
오디션은 그들이 제시한 규칙 안에서 정교하게 흘러갔다. 정해진 몸짓을 수행하고, 약속된 소리를 내뱉는 과정들. 나는 수화아티스트로서 평생 탐구해온 '언어 너머의 소통'을 그 낯선 동작과 소리 속에 투영했다. 비록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수어가 아닌 몸짓을 했지만, 손끝 하나 발끝 하나의 각도에는 침묵 속에서 단련된 나만의 농밀한 언어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호피 무늬는 그곳에서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파격적인 무늬가 내가 내뱉는 소리의 파동과 만날 때 공간에는 기묘한 에너지가 일었다. 함께 호흡을 맞춘 파트너와의 교감, 심사위원들의 굳게 다물어진 입술 위로 흐르던 그 묘한 긴장감을 나는 기억한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리움의 주인이었고, 그곳의 모든 정적을 나만의 리듬으로 다시 쓰고 있었다.
결과는 결국 '낙방'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설계한 전시의 톤 앤 매너와 나의 야성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해석한 몸짓의 농도가 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짙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진솔함과 용기에 감동했다"는 그들의 고백은, 나의 호피 무늬가 리움의 견고한 벽에 작지만 분명한 흠집을 냈다는 증거였으니까. 나는 선정자가 되어 전시장 안에 박제되는 대신, 그들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기는 쪽을 택한 것이라 믿기로 했다.
탈락은 쓰다. 하지만 그 쓴맛 뒤에 오는 이 개운함은 무엇일까. 윙- 소리를 내던 세탁기가 멈췄다. 젖은 호피 츄리닝을 하나하나 털어 거실 건조대에 널며 생각한다. 대기질이 좋지 않아 창문을 꼭 닫아둔 밤, 거실등 불빛 아래 널린 나의 무늬들이 눅눅한 기운을 벗어던지며 고요하게 내일을 준비한다.
이 옷에 묻어있던 '리움의 공기'는 씻겨 나갔지만, 그곳에서 내가 뿜어냈던 몸짓의 에너지는 이제 내 근육 속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나는 여전히 나만의 무대 위에서 소통하는 아티스트이자 글을 쓰고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다. 합격이라는 승인 없이도 나의 예술은 계속될 것이고, 나의 시선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바싹 마른 이 옷을 다시 입고 마주할 내일, 리움이 놓친 나의 이 진솔한 용기가 또 누구의 가슴에 가 닿을지 궁금해진다.
호피 츄ㅎ리닝을 입고 리움 오디션에 간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