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왜 하필 12시에 도망쳤을까?

손목닥터가 알려준 0시의 잔혹한 평행이론

by 지후트리
수어 그림 < 12 > / 지후트리 / 2017



신데렐라는 왜 하필 12시에 도망쳤을까?


밤 12시라는 시간은 참 묘한 경계선 같다.

우리가 쓰는 '손목닥터' 같은 건강 앱은 밤 12시 정각이 되면 가차 없이 숫자를 0으로 되돌려 버린다.

8000보를 목표로 열심히 걸었는데, 하필 7,897보에서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그동안의 노력이 화면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참 허탈한 마음이 든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스템은 기다려주지 않고 '리셋' 버튼을 눌러버린다.

이런 모습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신데렐라'와 참 많이 닮아 있다. 신데렐라도 12시가 되면 화려한 마차와 드레스가 사라지고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실 이런 동화들은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만들어졌다기보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세상의 규칙은 이렇단다"라고 가르치기 위해 설계한 일종의 안내서 같다.

정보가 부족한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여주는 동화 속 세상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정해진 시간과 규칙'을 지키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동화가 때론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그 안에 숨겨진 냉정한 규칙들이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 시스템과 너무나 똑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앱을 깔아 운동하는 것도, 동화를 읽고 교훈을 얻는 것도 우리가 더 건강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들이다. 누가 억지로 시킨 건 아니지만, 우리는 어느샌가 시스템이 정해놓은 '12시'라는 틀에 우리 자신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 12시가 되면 모든 게 초기화되는 행정 시스템이나 신데렐라의 마법은, 우리 사회가 약속한 '질서'가 얼마나 엄격한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7,897보에서 멈춰버린 숫자가 아쉽긴 하겠지만, 사실 그 숫자가 사라진다고 해서 내가 오늘 땀 흘리며 걸었던 수고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시스템은 0이라고 말할지라도, 내 몸과 마음에는 이미 그만큼의 건강함이 쌓여 있을 테니까. 12시의 리셋이 주는 허탈함에 너무 마음 쓰기보다, 그 시간까지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을 토닥여주는 건 어떨까.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