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해외여행지는 일본 오사카와 교토였다. 서른이 넘어서야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빳빳한 종이 위에 첫 출국 도장을 찍었다. 남들은 이미 수차례 다녀왔을법한 흔한 여행이라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도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그 기억은 여름의 농도 짙은 습도를 가까스로 피해 다녀온 보상처럼, 기분 좋은 향수의 잔향이 되어 내 일상에 오랫동안 남아 있다.
비행기로 단 1시간 20분. 이 짧은 거리를 마음속에서는 왜 그리 멀게만 느끼며 서른을 넘겼을까. 하지만 막상 도착한 그곳의 풍경은 내가 사랑했던 애니메이션 속 세계와 닮아 있었다. 전철 창밖으로 흐르는 나지막한 주택가와 정갈한 골목길은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한 장면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화면으로만 보던 그 성정적인 감성이 현실의 공기가 되어 피부에 와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낯선 땅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이방인으로서 느낀 소속감은 언어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아는 짧은 일본어 단어로 음식을 주문하고 계산하던 찰나, 내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 언어가 현지 점원의 미소와 맞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이곳에 사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여행의 절정은 레이카와쿠보의 브랜드 '꼼데가스송'의 본점을 방문했을 때였다. 매장 안은 밖의 습도와는 전혀 다른 서늘하고 정갈한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제품 사이에서 내 시선을 멈추게 한 건, 유난히 선명한 색감을 뽐내던 작은 지갑 하나였다. 그 지갑을 손에 쥔 순간의 매끄러운 감촉은 서른 해 동안 가보지 못한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내디딘 나 자신에게 건네는 첫 번째 악수이자 훈장이었다. 지금도 그 지갑을 열 때면 오사카의 그 서늘한 공기와 나를 반겨주던 다정한 일본어의 온도가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물론 여행은 달콤한 보상만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행시간에 단 1분이라도 늦으면 예외를 두지 않는 일본의 철저한 원칙주의 앞에 망연자실했던 순간도 있었다. 아무리 사정해도 열리지 않는 게이트 앞에서 당혹감에 휩싸였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가장 빠른 다음 비행기를 예약하고 공항 근처 호텔을 잡으며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냈다. 그 막막한 상황을 해결해 내며 나는 즐거운 관광보다 더 값진 '진짜 여행'의 근육을 키웠다.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꺼내 본 애니메이션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가왔다. 주인공들이 마주한 낯선 세계의 두려움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용기가 이제는 내 경험처럼 선명하게 읽혔다. 단순히 예쁜 그림체가 아니라, 내가 직접 들이마셨던 오사카의 공기와 습도가 영화 속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일본 여행을 통해 해외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더 깊은 소통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손에서 놓았던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나의 2026년 목표는 명확하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익혀, 현지인과 막힘없이 대화하며 다시 한번 그 애니메이션 같은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30대의 첫 여권은 이제 막 첫 장을 채웠을 뿐, 나의 진짜 여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
어떻게 하면 일본어를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본어를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