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침표 위에서 이어지는 나의 다음 챕터

by 지후트리


수어그림_버리다.jpg 수어 그림 <버리다> / 지후트리 / 2017



아버지의 마침표 위에서 이어지는 나의 다음 챕터


폭풍 같던 4월의 절반이 지나갔다. 서른아홉 번째 생일과 공연 <단단한 어둠을 깨는 법>을 연달아 치러내며, 나는 비로소 움츠렸던 몸을 펴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수행해 나가고 있다.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감각이 주는 행복은 달콤하지만, 그 이면에는 뼈아픈 교훈이 남았다. 나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밀어붙이는 일은 하지 말 것. 스스로 꽤 성숙해졌다고 믿었던 마음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공교롭게도 나는 이제 아버지가 생을 마감했던 그 나이에 가닿았다. 서른아홉.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한 나이가 되고 보니 삶을 대하는 근육의 긴장도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아버지는 죽음을 예감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을까, 아니면 평생을 사랑했던 아내에 대한 지독한 미련이었을까. 아버지는 서른아홉이 되자마자 떠났고, 나는 이제 막 그 나이의 문턱을 넘었다. 이것은 단순한 나이의 숫자가 아니라, 내게 주어진 '제2의 삶'이다.

나는 서른아홉의 생일에 다시 태어났다. 아버지가 멈춰 섰던 그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1살의 마음으로 세상을 새롭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를 오염시키던 낡은 관계와 사건들을 기꺼이 버리고, 갓 태어난 아이의 눈으로 미래를 응시한다. 이 새로운 생의 감각은 구체적인 다짐으로 이어진다. 남산의 벚꽃 아래서 동료 정아님과 나눈 대화처럼, 스토리텔링을 축으로 삼아 그림 동화책을 집필하고 캐릭터를 창조하며 내 서사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이나 11월쯤, 이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상상을 하면 기분 좋은 긴장감이 차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나는 '유희'에 대해 생각했다. 어머니는 서른일곱에 남편을 보내고 스스로가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던 시간을 고백했다. 엄마의 갱년기가 지났을 무렵쯤이었을 거다. 외할머니를 잃고, 돌아갈 곳 없는 상실감에 젖어 있을 때,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조카 쌍둥이들의 탄생이었다고 한다. 죽음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생명의 온기라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다. 여전히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귀하게 얻은 이 삶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제 나의 시선은 내년으로 향한다.

내년이면 나는 '불혹'의 나이가 되지만, 동시에 두 번째 인생의 '두 돌'을 맞이한다. 한국에서 아이가 두 돌이 되면 잔치를 열어 성장을 축하하듯, 나는 내년 생일에 나의 불혹이자 두 번째 인생의 두 돌잔치를 열 생각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의 순수한 열정이 공존하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파티가 될 것이다.

나는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걷는 행위를 통해 끊임없이 생각을 정돈하며, 내 삶을 누구도 함부로 침범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1살의 마음으로 시작해 2살의 축제를 기다리는 이 여정 속에서, 나는 기필코 행복해질 것이다. 기록은 그 행복을 향한 가장 정직한 발자국이 될 것이다.

아버지의 마침표 위에서 쓴 나의 첫 문장포


지후트리 ghootree

그림 지후트리 ghoot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