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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마니 May 03. 2023

마지막 인사

- 회사는 아쉽지 않지만, 사람은 아쉽다 -

퇴사 2주 전부터 본격적으로 마지막 인사를 위한 식사 약속을 잡았다. 회사를 꽤나 오래 다닌 덕에 인사를 드릴 분들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꼭 식사를 해야 될 것만 같은 분들과 약속을 잡았다. 매일 점심, 다른 분들과 식사를 하면서, 똑같은 퇴사인사를 했다.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동료들이었기 때문에 퇴사 얘기를 듣고 적잖이 당황해하셨지만, 다들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런 응원과 축하를 받으며 떠나다니, 난 참 복 받은 사람이다.


출근 마지막 날, 회사를 돌면서 진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퇴사 소식을 전혀 몰랐던 이들은 매우 놀랐고, 이미 알고 있던 이들은 이유를 묻거나 퇴사 이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같은 말들을 반복하며 인사를 마무리했다. 좋은 사람이 떠난다며 아쉬워하는 동료들을 보며, 그게 인사치레였더라도 내심 마음은 따뜻했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니, 스스로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동안 회사는 벗어나고 싶을 만큼 싫을 때가 많았지만, 몇몇 동료들은 진심으로 좋았다. 친한 친구보다도 더 끈끈한 동료들도 있었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시시콜콜한 사정도 다 공유하곤 했다. 가끔은 가족보다도 더. 회사를 떠나려니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와 제일 가깝게 지낸 선배님과 이제 막 우리 팀에 적응한 후배들, 곧 육아휴직 후 복귀를 앞둔 후배, 오랫동안 친하게 지낸 몇몇 동료들... 눈에 밟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퇴사 이후에도 연락하고, 종종 보자는 약속을 했지만,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오랫동안 기억할 거라는 것은 안다. 언제든 연락해도 반겨줄 거라는 것도.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을 보낸 회사, 그 긴긴 기간 동안 같이 했던 동료들, 그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친한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지금 기분(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는데, 친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너무 아쉽지만, 내 기분은 '신남' 그 자체였다.

"나 지금 너무 신나! 행복해!"

동료들을 떠나며 아쉬웠지만, 나는 지금 당장 새로운 시작에 너무 설레고 신이 났다. 이별을 하는 사람치고는 너무 웃어서 두 볼이 아플 지경이었다. 아쉬움 보다 설렘이 큰 퇴사였다.


그렇지만, 동료들과 하던 시답잖은 농담들과 꿀 같은 점심외식, 햇살 좋은 날의 짧은 산책, 스트레스 해소용 상사 험담들이 때때로 그리운 순간들이 있을 거다. 역시 회사를 떠나도 남는 것은 사람들. 그들과의 소소했던 추억들이다. 회사생활 17년간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고, 그런 과정에서 결국 남겨진 사람들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이 사람들만큼은 인생에서 꼭 기억할 사람들, 내 회사생활의 훌륭한 유산이다.

그들 모두, 어느 순간, 어느 상황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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