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그래봤자 두 달이 채 안되지만, 두 달 동안 백수로 지내면서 달라진 것들을 남겨보려고 한다. 이제 갓 백수로 돌아온 나의 기록이다.
이전 글(퇴사 이후의 일상)에도 썼듯이, 제일 좋은 것은 역시나 알람 없는 아침과 더 이상 두렵지 않은 월요일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이건 월요일 저녁이건 이제는 모두 똑같은 하루일 뿐이다.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 산책을 할 수 있는 한량 같은 시간들을 온전히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문득 찾아오는 불안감도 없지는 않았지만, 이 달콤한 시간들을 누리고자 의도적으로 외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점차 사그라지고 있다. 가끔씩 머리를 내미는 이 불안감이라는 녀석은 어쩌면 백수로서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 혹 같은 게 아닐는지.
그렇지만, 난 지금 대체로 좋다. 하루가 몹시도 의미 없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 그게 별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오늘 하루를 나대로 살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잠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가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을 충분히 자고 나니 전혀 피곤하지 않고 컨디션이 좋다. 그동안 모자랐던 잠을 몰아서라도 자는 건지, 하루에 9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루틴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잠은 8시간으로 줄여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퇴사 이후 또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가까운 일본(도쿄)으로 10일간 다녀왔는데,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 그런지 열흘도 돌아올 때쯤 되니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녔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10일간의 여행이었는데도 돌아오려니 아쉬운 것 투성이었다. 역시 난 여행을 사랑하는구나! 다시 한번 세계여행에 대해 동기부여를 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여행 내내 찍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처음으로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장기 세계여행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유튜브를 처음으로 개시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 영상은 연습용이라는 마음이었지만, 막상 편집을 하고 음악을 입히고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다 보니 시간과 노력이 제법 드는 작업이었다. 2주 동안 6개의 영상을 업로드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초보 유튜버로서 단점이 더 크게 보이는 영상들이지만, 일단 시작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일단 시작했고 실행에 옮겼다는데 스스로 만족한다.
요즘 '대퇴사의 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부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퇴사라는 게 더 이상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데서 대퇴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퇴사의 시대에 발을 담근 나도 퇴사 이후에 변화된 것들을 생각해 보니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작들로 채워져 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유튜브를 시작했으니!! 퇴사라는 허들을 넘지 못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들이다. 회사원이라는 프로필을 '크리에이터'로 수정하면서 단순히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아닌 더 큰 의미의 크리에이터로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게 '크리에이터'라는 허상은 스스로에게 '넌 뭐든 할 수 있어!'라는 무한한 기대를 갖게 한다. 뭐라도 하면 되지?
퇴사하고 보니 퇴사가 정답은 아니지만, 뭔가 새롭게 시작하려면 끝을 내야 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퇴사는 용기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나의 퇴사가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퇴사 이후에 점점 더 깨닫고 있다. 당시에는 나조차도 조금은 무모하다고 느꼈는데 회사를 벗어나니 또 다른 길이 열렸다. 프로필을 수정하면서 퇴사 이후의 변화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