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시간이 갈수록 현실에 맞춰서 적당히 이룰 수 있는 범위로 좁혀졌다. 물론 요즘 같아서는 회사원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렇게 원하던(?) 회사원이 되었는데, 지금 와서 후회되는 건 '왜 20대에 더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는가?'이다. 그때로 돌아간들 뭐가 달라질까 싶지만, 마흔 살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있다. "회사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냐고, 다른 길은 정말 없었던 거냐고?"
20대의 내가 변명을 하자면, 당장 학자금 대출이 줄줄이 밀려있던 나는 돈을 빨리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회사원이 되면 모든 행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올 것만 같았다. 멋진 커리어우먼을 상상하며. 그렇게 회사원으로 언 16년,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아니라, 그저 돈 버는 기계였다. AI도 나보다는 행복하겠다 싶은 순간들도 있었고, 노예처럼 느껴졌던 순간들, 비굴함에 치가 떨렸던 순간들, 말로 다 할 수 없는 좋지 않은 순간들이 많았다. 오히려 좋았던 기억은 습자지만도 못한 것들이라 이미 기억에서 휘발되어 버렸다.
16년 동안 차곡차곡 이뤄온 수많은 성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지가 않다. 일을 하면서 즐겁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사직서를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수많은 회사원 중 하나다. 그렇다고 준비되지 않은 채 관둘 용기는 없다. 그래서 시작된 나의 마흔 살 진로 고민은 아직도 폭풍 속을 항해 중이다. 지금 와서 진로 고민을 한다는 게 너무 늦었다 싶고, 안정적인 회사에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쓸데없이 웬 진로 고민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지만, 마흔 살은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젊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도전할 거리를 찾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뭘 할 수 있을까? 나는 뭘 잘할까?'를 파악해야 하는데, 결국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제일 답답한 지점이다. 어느 정도 잘한다 싶은 것들은 잘하는 것을 뛰어넘어 예술의 경지인 장인들이 이미 넘쳐나는데, 나는 취미반 회원 수준밖에 안 되는 실력에 남은 인생을 맡길 순 없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잘하는 걸 떠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6년 회사생활은 나를 결정장애 무지렁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제는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인 것만 같다.
숱한 고민 끝에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던 학창 시절을 생각해냈다. 과거에는 한때 드라마 작가, 시인 등등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성공할 만큼의 소질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엄두도 못 냈었다. 그런데 최근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고 나서,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다시 한번 도전해보기로! 이미 두 번의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실패를 맛보고 '역시 나는 안되는구나' 좌절하면서 접을까 했지만, 열 번 도전해보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정도는 두들겨봐야 안돼도 깨끗이 포기가 될 것 같다.
마흔 살의 진로 고민은 아직도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글쓰기'라는 하나의 경유지가 생겼다. 경유지에서 놀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 경유지에서 새롭게 집을 짓고 정착할지 아직 모른다. 사실 자신도 별로 없다. 그래도 해보고 싶다. 나도 모르는 나의 뭔가가 있을지?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