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투자자 정태익 님이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가 큰 부자는 아니지만,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첫 계기를 떠올려보면, 결국 제 삶에 일어난 모든 일이 누구의 탓도 아닌, ‘제 탓’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였습니다.
그는 이후에도 ‘내 탓’의 절대성을 강조했습니다. 마치 부자의 세계로 들어가는 황금열쇠가 바로 그것인 양. 그래서일까요. 누군가 농담처럼 책임을 회피하면,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짚고 넘어갔습니다.
사연자: 지갑에 소비요정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돈 쓴 기억이 없는데, 자고 일어나면 돈이
줄어 있어요.
정태익: 사연자님, 제가 그 말투 쓰지 말라고 했잖아요. 지갑에 소비요정 안 살고요. 잠든 사이 부모님이 돈을 빼 쓰신 것도 아니구요. 도둑이 든 것도 아니구요. 결국 본 인이 쓴 겁니다. 농담처럼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 시작하면, 그 말투가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결국 ‘진짜 나’가 됩니다.
놀랍게도, 그의 ‘내 탓’은 정말로 황금열쇠였습니다. 저는 돈 공부를 하면서 남 탓을 하는 부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직접적으로든, 은연중이든— 그들의 말투에서는 ‘내 탓’의 향이 배어 있었습니다. 마치 잘 우려낸 녹차처럼요.
- 회사 사장이 나쁜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냥 남일 뿐이니까요.
진짜 문제는, 그런 회사를 떠날 실력이 제게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공무원 시험에서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다면,
그건 운이 아니라 상대방이 저보다 한 문제만큼 더 공부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똑같은 운과 서로 다른 실력으로 시험을 칩니다.
- 제 가게가 망한 이유를 코로나19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위안을 삼으면, 같은 시기에 성공한 다른 가게들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돈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는 걸 공부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무렵부터 나도 조용히 ‘내 탓’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그것만이 부의 언어이자, 마법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내 탓’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랫동안 가난만 공부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내 탓’은 대개 죄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던 건 아닐까.” 저는 저 자신을 비난했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듯, ‘내 탓’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자의 ‘내 탓’에는 죄의식도, 연민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둑기사가 지난 대국을 복기하듯, 실수만 되짚었고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잘못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의 ‘내 탓’은 자기비난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분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뜻밖에도, 한 젊은 무당이었습니다.
유튜브 채널 [직업의 모든 것]에 출연한 게스트였고, 저는 우연히 그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에게 점사를 보러 오는 손님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세요.
두 그룹의 차이는 아주 간단해요. 부자는 ‘내 탓’을 하고, 일반인 손님들은 ‘남 탓’을 하세요.
이어서 설명했습니다.
“일반인 손님들은 문제해결에 관심이 없으세요. 그냥 저에게 하소연을 하세요.
가령 [ 나는 A 직원을 가족처럼 대해줬는데, 그 사람이 날 속상하게 해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태도와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즉 자신이 착하고 옳다고 저에게 확인 받고 싶어 하세요.
하지만 부자들은 질문이 달라요. [ 말 안 듣는 직원을 내보내고 새로 뽑으려고 해요. 이번에는 우리 회사랑 궁합이 잘 맞을까요?] 이미 마음속에서 해고를 결정한 상태세요
그리고 마무리했습니다.
맞아요. 부자들은 인간미 없어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남 탓을 하지 않고 또한 남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아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바로 실행에 옮기세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잘못했잖아. 사과해.” 혹은 “왜 그렇게 고집이 세? 제발 사람 말 좀 들어.”
즉. 우리는 타인을 바꿈으로써 상황이 나아지길 원합니다. 하지만 부자들은 그 방식에 기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자들은 실패와 성공을 통해 한 가지 진리를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무당의 부자 손님이 직원을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해고하는 이유도 단순합니다. 스무 살 넘은 성인을 말 몇 마디로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새로 사람을 뽑는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 직원이 밉거나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해고와 채용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면 타인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투자 대비 수익이 너무 낮고, 너무 느립니다. 반면, 지금 이 순간, 적은 비용으로 가장 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부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먼저 바꾸려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을 먼저 바꾸려 합니다. 그 차이가 쌓이고, 결국은 삶의 방향까지 달라집니다.
유튜버 주언규 님은 ‘인생의 난이도를 낮추는 비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내면으로 판단하는 건 정말 훌륭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런 훌륭한 사람은 100명 중
1명이 될까 말까입니다. 대부분은 외모, 학벌, 직업 같은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하죠.
여러분, 그 1명의 기준에 맞춰 살 건가요? 아니면, 99명의 기준에 맞춰 살 건가요?
답은 정해져 있습니다. 1명의 기준에 맞춰 살면, 그 인생 망한 겁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부자들이 ‘내 탓’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 타인은 타인을 바꿀 수 없다. 고로, 가장 빠른 문제 해결법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개의 짧은 사례를 전하며 글을 맺고자 합니다.
내가 돈이 많을 땐, 대한민국은 아주 공평한 나라였어요.
그런데 돈을 잃고 나니, 대한민국은 너무 불공평한 나라더라고요.
<강원랜드에서 전 재산을 잃은 한 사업가의 인터뷰>
뚱뚱할 땐, 대한민국은 제게 불친절한 나라였어요.
그런데 살을 빼고 나니, 대한민국은 너무나도 친절한 나라였어요.
< 다이어트에 성공한 20대 여성의 SNS 글>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이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는 걸 무기력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 정재승 교수 >
‘내 탓’ 단순하지만 강력한 부의 시크릿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