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사랑입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한국의 금융문맹률은 60%에 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적 투자자 짐 로저스도 “한국인은 교육열은 세계 최고지만 금융 지식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따로 있습니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 절반 이상이 이자와 물가 같은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금융 지식이 서툴까요? 왜 돈 이야기를 꺼내면 늘 불편해질까요?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왠지 속물처럼 보이고, 부자를 존경한다고 말하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뿌리를 돈과 부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혐오에서 찾습니다.
돈과 부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한국 사회만의 현상도 아닙니다.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대물림되어 온 ‘가난의 편향’입니다.
전래 동화와 고전 소설 속 부자는 늘 욕심쟁이였고, 현대의 드라마와 웹툰 속 부자 역시 서민을 짓밟는 악당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움켜쥔 돈은 우정을 깨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는 괴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가난의 편향은 가정의 밥상머리에서 다시 강화됩니다. 미디어를 통해 영향을 받은 부모는 밥상머리에서 자녀에게 “돈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가난해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부자를 속물로 여기고, 가난한 서민은 오히려 맑고 선한 이들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 또한 미디어가 제공하는 가난의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결국, 세대가 바뀌고 배움의 터가 달라져도, 자본주의를 배울 길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셈입니다.
미국도 미디어에서는 부자를 비판합니다. 이는 소수의 부자보다 다수의 서민이 미디어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부자를 존경하는 문화 역시 존재합니다. 대학교 졸업식 무대에는 유명 CEO가 올라와 연설을 하고, 캠퍼스 건물 곳곳에는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집니다. 젊은 세대가 부자를 선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자본주의가 자라온 것입니다.
한국은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 돈과 부자를 멀리하도록 학습했고, 금융 선진국(미국)은 존경과 선망을 학습했습니다. 이 차이가 금융 지식 수준의 격차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사회적 현상을 ‘혐오의 무지’라 부릅니다.
가령,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담배 브랜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혐오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에서 멀어지고, 결국 알 기회를 배제해버립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자발적 무지입니다.
놀라운 건 존경받는 지식인들조차 이런 무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대중 강연에서 금융에 관한 어설픈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면, 저는 종종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아무리 인품이 훌륭해도 돈과 담을 쌓아온 만큼 금융 지식은 서툴 수밖에 없습니다. 지식의 질은 결코 인품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2024년 6월,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겠나.”
안타까운 죽음이 뒤따른 만큼, 그의 표현은 더욱 부적절했습니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전세사기’와 ‘깡통전세’를 혼용했지요. 전세사기는 명백한 범죄지만, 깡통전세는 공부하지 않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리스크였습니다.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에 투자해 손실을 보았을 때, 법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매우 미약합니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들이 방치되어온 것을 보면, 법이 바뀔 가능성은 낮습니다. 게다가, 어쩌면 애초에 언론의 표현이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인에게 주식과 부동산 공부를 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수능 공부를 토할 만큼 했습니다. 성인이 된 지금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피곤함과 단호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습니다.저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제 권유를 욕심으로 들었지만, 제가 전하고 싶었던 건 단순했습니다.
혐오의 무지에 빠져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말라는 것.
자본주의는 단지 탐욕의 체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그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과거에는 해외여행이 부자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저가항공 덕분에 대학생도 배낭을 메고 떠납니다.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로만 찍던 사진을, 이제는 누구나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간직합니다. 저렴한 구독료로 음악과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쟁 체제 덕분에 우리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는 건 부자를 미화하는 게 아닙니다. 이 체제가 없다면 우리의 생존과 생활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돕고, 부자가 많아야 약한 조국을 지킬 수 있다.”
돈을 혐오한 나머지 외면한다면,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의학과 기술, 그리고 더 나은 내일도 외면하게 됩니다.
가난의 밥상을 걷어차는 첫 번째 방법은 돈을 멀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건 탐욕을 좇는 일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언어를 배우는 일입니다. 가계부 한 줄을 쓰는 것, 금융 책을 한 장 넘기는 것, 작은 투자라도 시도해보는 것. 그 사소한 행위가 혐오의 무지를 깨뜨리는 시작입니다.
혐오는 대상을 멀리하게 만들고, 사랑은 대상을 배우게 만듭니다.
그러니 부디, 당신만의 방식으로 돈을 사랑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