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무지 (2부 : 중국)

by 이영우

이후에도 저는 그 지인에게 몇 차례 더 돈 공부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지인은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낯뜨거운 순간을 맞았습니다. 투자의 ‘투’자도 모르는 그 지인에게서 오히려 제가 ‘혐오의 무지’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역시 오만에 빠지면, 신은 곁에 다가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그 지인의 취미는 피규어 수집이었습니다. 가장 비싼 소장품은 무려 500만 원에 달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었습니다. 헤어스타일, 의상, 얼굴까지 전문 작가에게 맡겨 커스터마이징을 완성했습니다. 머리카락만 해도 30만~50만 원, 얼굴은 작가의 명성에 따라 200만 원을 호가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손바닥만 한 교복 의상이 실제 교복보다 더 비쌌다는 사실입니다. 작은 면적 안에 교복의 모든 디테일을 정교하게 수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규어 커스터마이징 작가 중 세계 정상급은 대부분 중국 사람들이에요. 서양인도,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니에요.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저렴이’ 국가가 아니에요.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제 머릿속의 중국은 여전히 ‘짝퉁’과 ‘불량품’의 대명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2차 전지를 예로 들며 맞섰습니다.


당시 한국은 3원계 방식을, 중국은 LFP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3원계는 LFP보다 한 차원 앞선 기술로 여겨졌습니다. 두 방식 모두 노하우가 필요했지만, 3원계는 높은 에너지 밀도를 확보해야 했기에 더 섬세한 감각과 숙련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제조 기술이 중국에 뒤처진다는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지인도 발끈하며 맞받았습니다.

피규어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에요. 정밀 금형, 채색, 몰드 조형, 조립 같은 제조 기술의 집합체예요. 중국산 양산형 피규어만 봐도 이미 수준이 상당합니다. 이건 피규어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른 중국 제품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둘은 한참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이불을 걷어차며 잠을 설쳤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하필 그날 방송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은 수십 년간 전 세계의 공장을 자처해왔습니다. 그것도 이탈리아 명품 가방과 애플 아이폰처럼, 세계적인 브랜드가 요구하는 품질을 오차 없이 양산해왔습니다. 이미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이 세계 정상이라 봐야 합니다. 나아가 전기차, 2차 전지, 자율주행, AI 같은 차세대 기술도 훌륭합니다. 특히 CCTV를 활용한 AI 기술은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입니다. 주식 투자자라면 반드시 중국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혐오의 무지’에 빠져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중국은 무례한 관광객, 짝퉁 제품, 정치적 독재, 혐한 시위로만 존재했습니다. 편향적인 유튜브 영상과 국뽕 뉴스가 제 시야를 가렸고, 저는 과거의 선입견 속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제가 중국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은 '고도의 기술력'이 아니라 '선진화된 창업 시스템'이었습니다. 화웨이의 런정페이, 샤오미의 레이쥔, BYD의 왕촨푸, 텐센트의 마화텅, 바이트댄스의 장이밍. 이 창업주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모두 농촌, 서민, 혹은 중산층 출신의 공대생들이었습니다.


즉, 중국은 흙수저 출신의 천재에게도 대기업 CEO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본주의의 요람인 미국의 실리콘밸리처럼요.


결국 문제는 중국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시했던 제2, 제3의 중국이 나타나, 어느 순간 우리의 위상과 자리를 넘어설지도 모릅니다. 혐오는 이처럼 무지와 결합해 눈앞의 시야를 가립니다.


저는 왜 ‘혐오의 무지’에 빠졌을까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정보를 너무 쉽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액의 연봉을 받는 기자와 앵커가 내보내는 뉴스가 공짜라면, 그 공짜의 대가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저는 그 질문을 놓쳤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지인의 말이 제 눈을 뜨게 해주기 전까지, 저는 혐오와 무지라는 좁은 방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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