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무지 (3부:지배)

by 이영우

마지막은 ‘지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소수이고, 서민은 다수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부자들이 서민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낄까요? 저는 그 해답 역시 ‘혐오의 무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음식점 하나를 차려도 사장은 소비자를 연구합니다. 가게 주변에 직장인이 많은지, 사회초년생이 많은지, 젊은 부부가 많은지, 또 자녀가 있다면 연령대가 어떤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음식이라도 다르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령, 초밥집을 연다고 해봅시다. 변호사가 많은 법조인 거리에서는 5만 원 이상의 초밥 코스가 통합니다. 반대로 젊은 부부가 모여 사는 빌라촌에서는 합리적인 가격뿐 아니라, 생선을 싫어하는 아이를 위한 돈가스 메뉴도 준비해야 합니다. 엄마가 밥집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결국 ‘우리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가’이기 때문입니다.


무술 보법(步法)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같은 거리라도 적에게는 멀게, 나에게는 가깝게 느껴지게 하라.”

상대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를 고려해 신체적 사각지대에서 약점을 공략하라는 뜻입니다. 핵심은 결국 상대를 연구하는 데 있습니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 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관객은 부자가 아니라 직장인들입니다. 그분들이 돈을 모아 어렵게 제 공연을 보러 와주십니다. 그러니 저는 무대를 대충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옥주현 님이 최고의 배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단순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관객을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 덕분에 매번 무대를 치열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배우로서 더 빛날 수 있었습니다.


소비자만이 아닙니다. 부자들은 외주업체에 일을 맡길 때도 상대를 연구합니다.

카피라이터 출신의 한 교수님이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CJ 임원과 회의를 가졌는데, 그 임원이 블랙커피에 설탕을 푹푹 넣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물었습니다. “건강에 해로운데, 무슨 설탕을 그렇게 많이 드세요?” 임원은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사람들이 건강 때문에 설탕을 줄인다면, 저라도 많이 먹어야죠. 소중한 우리 제품인데요.”


돌이켜보면, 그 몇 스푼의 설탕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는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 애사심을 드러내는 편이, 일을 맡기고 협력을 끌어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본 것이죠. 사실 일이라는 건 억지로 시킨다고 굴러가는 게 아닙니다. 결국 ‘일할 맛’이 나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옵니다.


결국 소수의 부자가 다수를 지배해온 방식은 ‘강압’이 아니라 ‘배움’이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처럼 갑질을 일삼는 안하무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관객을 이해하려 했던 배우처럼, 외주에 일을 맡기던 임원의 작은 연출처럼, 상대를 연구하고 좋은 감정으로 다가서려 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혐오하는 대상을 우리는 공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부하지 않으면, 결국 역으로 지배당하게 됩니다.


믿기 어렵다면 MZ 신입사원을 떠올려 보십시오. MZ라는 용어 자체가 그 세대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케팅 언어입니다. 반대로 임원들을 지칭하는 마케팅 용어는 없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임원의 취향이나 생각을 공부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겁니다. 오히려 ‘꼰대’라며 회식을 피하고, 업무용 카톡조차 스트레스라며 기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자리를 피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도 임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임원들은 오히려 MZ 세대를 공부합니다. CJ는 ‘역멘토링’을 도입해 신입사원이 임원의 멘토가 되게 했고, LG유플러스 임원들은 신입사원에게 당근마켓 거래법과 MBTI 문화를 배웠습니다. 교보생명 임원들은 신입사원과 함께 댄스를 배우며, 말 그대로 신입사원의 세계를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겉으로는 신입이 임원을 가르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임원들이 낮은 자세로 신입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배우려는 장치였습니다.


왜 이와 같은 노력을 할까요? 우리 기업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먼저 이해하고 다가선다.’ 이것이 부자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반,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글은 “악마가 되지 말자(Don’t be evil)”라는 사훈을 내걸며, 기업의 이윤보다 도덕적 가치를 앞세워 그들을 붙잡았습니다. 2010년대,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 되자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이 시기의 상징은 ‘욜로(YOLO)’였습니다. 기업들은 곧장 제도에 반영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무제한 휴가를 도입했고, 구글과 페이스북은 무료 식사와 여가 지원, 업계 최고 수준의 휴가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엔비디아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줍니다. 주식 보상을 통해 직원들을 백만장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업무 강도는 새벽까지 이어지지만, 이직률은 업계 평균 17%에 비해 2~3% 수준에 불과합니다.

기업들은 언제나 같은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 세대가 무엇을 중시하는지를 배우고, 그것을 제도로 만들어 붙잡아 온 것입니다.


결국 지배의 본질은 힘의 크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 더 오래 배우고, 더 깊이 이해했는가. 그것이 지배를 가른 본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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