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을 넘는 통찰 (2부. 주경야독)

2. 주경야독 (晝耕夜讀) - 밤에 일하고 낮에 공부하다

by 이영우

2. 주경야독 (晝耕夜讀) - 밤에 일하고 낮에 공부하다


주경야독의 본래 뜻은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는 책을 읽는다]입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밤에 일하고 낮에 공부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흥업계 종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이경백. 한때, 연 매출 1,000억 원을 기록한 밤의 제왕.

서울 북창동에서 시작해, 강남까지 진출한 룸살롱의 신화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잘나가던 건 아닙니다. 학력도, 인맥도, 배경도 없던 그는 북창동의 작은 룸살롱에서 웨이터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팁 몇 푼에 고개를 숙이고, 손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평범한 종업원. 하지만 그는 술은 입에 대지 않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며 더 큰 성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IMF 외환위기가 닥쳐옵니다. 한국 전체가 흔들렸고, 파산하는 기업과 가정들이 속출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이 바로 유흥가였습니다.


많은 가게들이 피크타임에도 불구하고 파리만 날렸고, 화려했던 네온사인들도 어느덧 하나둘씩 꺼져갔습니다. 하지만 이경백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대기업 총수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천지개벽의 시기를 반대로 해석하면, 자신과 같은 가난한 서민이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천우신조의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그간 모아둔 돈을 몽땅 털어, 폐업 직전의 룸살롱 하나를 헐값에 인수합니다.

모두가 사업에 등을 돌린 그 시점에서, 그는 일생일대의 승부를 건 것입니다.


문제는 운용자금이었습니다. 무리한 인수였던 만큼 가게를 돌릴 자금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한 번, 기막힌 역발상을 합니다. 바로 빚을 내어 외제차를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종업원들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계획이 다 있었습니다.


‘IMF로 유흥업소가 줄줄이 무너질 때, 이경백은 외제차도 타고 잘나가더라’는 소문이 퍼지면… 불황을 피해 금고 속에 잠자던 돈들이 쥐새끼처럼 하나둘 내 쪽으로 기어 나올 것이다.


예측은 정확했습니다. 평소엔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던 소위 ‘쩐주’들이 그와 술자리를 갖기 시작했고, 이경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IMF 이후로 샐러리맨들의 지갑은 굳게 닫혔습니다. 집집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죠.

이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싶을 까요? 아닙니다. 더 강한 자극, 더 화려하고 더 과감한 쇼를 원할 겁니다. 저는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볼거리로 손님들의 이목을 끌 겁니다. ”


그가 제안한 건 ‘감각 소비’였습니다.

우울한 날에 매운 음식이 당기는 건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닙니다. 강한 자극으로 불행한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는 불황기일수록 사람들은 위로가 아니라 자극을 원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투자금을 유치한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나체쇼를 비롯해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도발적인 쇼들을 선보였고, 이 파격적인 서비스는 곧 ‘북창동식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입소문을 탔습니다.

서울 전역에서 손님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북창동을 장악한 뒤 5년 만에 강남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독서의 힘’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이경백은 지독한 독서광이었습니다. 책이 좋아서가 아니라, 책이 곧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설은 건너뛰고, 경영·마케팅·인간 심리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너희는 밤에 일하고, 낮에는 술 마시지?
나는 밤에 일하고, 낮엔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술 끊고 공부 좀 해라. 언제까지 종업원으로 살래?


이경백이 직접 설계한 마케팅 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소 민망합니다.

- 북창동식 서비스 (이목을 끄는 볼거리 행사)

- 양주 1병 + 맥주 무제한 시스템 (고가의 양주 한 병을 시키면 맥주를 무제한 제공)

- 매직 미러 초이스 (손님만 볼 수 있는 특수유리로 손님이 직접 보고, 여종업원을 선택)

- 낮 손님, 초저녁 손님 할인 (영화관 조조할인 개념)

- ‘풀살롱’ 시스템 (30만원으로 술자리 + 성매매가 제공)


핵심은 박리다매였습니다. 술은 공짜처럼 퍼주며, 손님이 취해 지갑을 열게 만드는 구조였죠.

전략은 완벽히 맞아떨어졌습니다. 강남 진출 5년 만에 3,600억 원. 웬만한 기업도 내기 힘든 매출이었습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는 결국 인성 때문에 무너집니다. 성매매 알선, 미성년자 고용, 뇌물. 그가 만든 제국은 법정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그는 존경받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를 잘못 배운 것이죠. 사람을 돈보다 아래로 대하는 순간, 대가는 반드시 찾아옵니다. 어쩌면 경영서와 마케팅서만이 아니라 철학과 역사책도 함께 읽었다면 지속 가능한 길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의미 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럼에도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무엇보다 독서를 실전에 활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남을 헐뜯는 말)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에게 책은 사람됨의 뿌리였고, 올곧은 정신의 바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경백에게 책은 ‘전쟁의 무기’였습니다. 그는 그 무기로 IMF란 불황을 돌파했고, 강남을 점령했으며, 수천억을 손에 쥐었습니다. 책은 그의 손에서 미사여구가 아닌, 고기를 써는 부엌칼이었습니다. 뼈를 끊고 살을 자르는 자본주의의 도구였죠.


그래서 저는 조심스럽지만, 동시에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책은 교양을 쌓는 장식품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무기입니다.

독서는 모범생들의 고상한 취미가 아닙니다. 자본주의 모험가들의 생존 무기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서민이 부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학교, 그것이 도서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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