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자산, 즉 달러로 환산할 가치가 있는 자산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으로 형성된 합리적인 가격’, 또 하나는 명성과 희소성이 만들어낸 거품 가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합리적인 가격이 거품 가격을 떠받치고 있어 쉽게 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쉽게 꺼지지 않는 거품을 우리는 프리미엄이라고 부릅니다.
강남 아파트의 가격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기본부터 짚어봅시다. 같은 지역의 아파트와 빌라가 있다면 왜 아파트가 더 비쌀까요?
첫째는 환금성입니다. 아파트는 평형과 연식이 규격화되어 있어 시세를 쉽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직접 보지 않아도 대략적인 상태와 가격이 예상되니, 거래가 활발하고 빠릅니다. 반면 빌라는 건축사와 시공사가 제각각이라 같은 동네라도 가격 차이가 큽니다. 비유하자면, 아파트가 ‘한국금거래소 24K 골드바’라면 빌라는 ‘세공이 들어간 18K 반지’에 가깝습니다.
둘째는 쾌적함과 안정성입니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지역으로 지정되기에 모텔이나 유흥시설 같은 위해 요인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법적 안정성은 큰 매력입니다. 반대로 유흥가 한가운데 세워진 아파트는 사실상 오피스텔과 다를 바 없으며, ‘아파트다운 아파트’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결국 아파트의 가치는 건물 보다는 주변 인프라가 결정합니다.
셋째는 인프라입니다. 인프라에는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1순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존 인프라’ — 직장, 지하철역(출퇴근)
2순위: 자녀의 생존과 생활을 좌우하는 ‘교육 인프라’ — 학교, 학원
3순위: 삶을 윤택하게 하는 ‘생활 인프라’ — 백화점, 문화시설, 공원
특히 1순위인 직주근접성은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입니다.
단, 기준은 ‘내 직장’이 아니라 ‘서울 전체 직장인’입니다.
서울 직장인 약 600만 명 중 170만 명이 강남 3구로 출근합니다. 열 명 중 세 명입니다. 그러나 ‘강남 3구의 노동 가능 인구’는 116만 명에 불과합니다. 전업주부, 학생(유학생 포함), 은퇴자를 빼면 실제 직장인은 더 적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수십만 명의 인원이, 다른 지역에서 강남으로 출근합니다. 평균 출근 시간이 30분~60분, 멀면 1시간을 넘기니, 누구나 강남 3구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이 절대적인 직장인 수요가 강남 아파트 가격을 떠받칩니다.
물론, 교육 인프라도 빠질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를 품은 ‘초품아 아파트’는 자녀의 안전한 등하교를 6년간 보장합니다. 부모라면 아이의 안전을 위해 얼마의 대출이자를 감수할까요? 무리를 해서라도 선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강남 아파트의 가격은 ‘부모의 직장’과 ‘자녀의 안전’이라는 생존 수요가 만든 합리적 결과입니다. 언론이 말하는 ‘부자들의 짬짜미’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녀사냥식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유명세라는 프리미엄 <<
그렇다고 ‘실거주 수요’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거품처럼 느껴지는 프리미엄이 존재합니다. 그 정체는 어쩌면 ‘실거주 수요’ 보다 더 단단한 ‘부자들의 투자 수요’입니다.
세계적인 부호들은 위기에 대비해 자산을 전 세계로 분산시킵니다. 미국의 뉴욕, 일본의 도쿄, 영국의 런던 등 주요 도시에 이미 부동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디를 선택할까요?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3구입니다. 또한 지방의 유지라면 어떨까요? 지방 부동산은 매력이 부족하니 서울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그때의 선택지 또한 강남3구입니다.
세계적 부호도, 지방 유지도 사실 서울 부동산의 세세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강남이 한국에서 가장 실거주 수요가 탄탄한 지역이라는 사실은 압니다. 더 나아가 대기업과 금융 회사의 본사가 밀집된 대한민국 경제 1번지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제 값을 잃지 않고 오르는 곳”이라는 프리미엄이 형성됩니다. 결국 강남 아파트의 가격은 ‘부자들이 자신들의 자산으로 인정한 가격’입니다.
비트코인도 비슷합니다. 서민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불나방 같은 투기 세력의 광기로 치솟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숫자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보입니다.
UBS의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0.1% 부자들(=패밀리 오피스)의 총자산은 약 90조 달러입니다. 이 중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금액은 약 0.9조~1.8조 달러, 총자산의 1~2%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상위 1%는 어떨까요? 이에 대한 직접적 통계는 없지만, 상위 0.1%와 유사하다고 가정하면 추론이 가능합니다. 약 215조 달러 (상위 1% 총자산)의 1~2%라면 약 2~4조 달러가 됩니다. 놀랍게도 이는 암호화폐 전체 시장 규모(약 4.2조 달러)와 거의 일치합니다. (비트코인은 약 2.3조 달러입니다.) 결국 비트코인의 가격은 광기에 휩쓸린 투기 세력이 아니라, 상위 1% 부자들 (약 8천만 명)의 합의로 정해진 값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추론도 가능해집니다. 상위 1%의 자산이 증가할 때마다, 비트코인의 가격도 그만큼 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부호들은 왜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인정했을까요? 저는 세 가지로 유추합니다.
첫째, 인플레이션 회피 기능입니다. 화폐는 발행될수록 가치가 줄지만,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정해져 있어 희소성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는 초보자라면 알트코인 대신 비트코인만이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화폐의 가장 큰 적은 매년 화폐를 발행해 가치를 떨어뜨리는 조폐공사입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조폐공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상위 1%의 자산이 계속 불어나는 한, 비트코인의 가치는 앞으로도 상승할 것입니다.
둘째, 보관과 이동의 편리함이 있습니다. 금과 달러는 해외 반출입이 까다롭지만, 비트코인은 디지털 지갑 속에 가볍게 숨겨둘 수 있습니다. 전쟁이나 범죄로 해외로 도피해야 할 때, 별다른 짐 없이 몸만 움직이면 됩니다.
셋째, 익명성과 안정성입니다. 랜섬웨어 해커들이 몸값으로 비트코인을 요구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것은 역으로 범죄자(해커)도 숨겨 주는 익명성과, 해커조차 뚫지 못하는 안정성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실물은 없지만, 실물보다 더 안전한 디지털 자산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결국 비트코인은 내재적 가치는 없지만, 부자들의 가장 간지러운 곳을 정확히 긁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리지 못하는 실질적 가치가 생겨난 셈입니다. 다만 그 비중은 자산의 1~2%에 불과합니다. 부자들은 비트코인을 투자 대상이라기보다는 대형 악재(전쟁, 범죄)에 대비하는 헷지 수단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자산의 1~2%만 하십시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계 부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예술품의 가치는 작가의 이력과 비평가들의 평가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그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부자들의 수요입니다. 그들은 작품을 투자 자산으로 보기도 하고, 품격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령, 에르메스 핸드백 열 개보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 한 점이 더 격조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과시는 ‘내 안목이 특별하다’는 자기만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남들이 알아봐야 진짜 효과가 납니다. 그래서 내 취향보다는 누구나 아는 작가의 작품에 수요가 몰리고, 그 명성이 다시 더 큰 명성을 부릅니다. 이렇게 커진 명성은 더 높은 가격을 부르고, 그 과정에서 프리미엄이 형성됩니다. 그 정점의 작품이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과수원입니다. 2022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1700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미국 초고층 펜트하우스의 거래가도 1000억~2000억 원 선에서 형성됩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세계적인 부호들이 자산으로 인정하는 가격의 임계점이 비슷하게 작동한 결과입니다. 실질적 가치와 상징적 가치, 그리고 세금·제도까지 얽히며 만들어진 합의된 가격인 것이지요.
달라 자산의 가격에는 늘 두 가지 얼굴이 공존합니다. 하나는 ‘생존을 지탱하는 실질적 가치’이고, 다른 하나는 ‘명성과 희소성이 만들어내는 상징적 가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둘을 억지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늘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는 한쪽 눈만 뜨는 사람이 아니라, 두 눈을 모두 뜨고 세상을 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실질을 보지 못하면 거품에 휘둘리고, 상징을 읽지 못하면 부자들의 수요를 놓칩니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만 보는 단순한 잣대가 아니라, 두 얼굴이 교차하는 지점을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강남 아파트의 실질적 수요와 동시에 작동하는 유명세, 비트코인의 기술적 가치와 지하경제의 니즈, 예술품의 작품성 위에 덧입혀진 부자들의 과시욕처럼 말입니다. 이 교차점을 이해할 때, 가격이 왜 버티고, 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투자란 거품을 피하는 기술이 아니라, 거품과 실질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기회를 찾는 일입니다. 어떤 거품은 단순한 착시로 사라지지만, 어떤 거품은 부자들의 수요가 떠받치며 ‘프리미엄’이 됩니다. 따라서 투자자는 이 거품이 허상인지, 아니면 부자들의 합의로 굳어진 프리미엄인지 가려내야 합니다.
두 눈을 모두 뜨는 순간, 시장이 가진 이중의 얼굴은 혼란이 아니라 길잡이가 됩니다. 거품과 수요의 차이를 읽어내는 것, 그것이 결국 시장을 오래 버티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