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자는 더 현명한 부자 곁에 머물려고 한다

by 이영우

1. 기회의 밀도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아들들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한양이 곧 문화의 중심이니 가까이 붙어 살아라.


오늘날에도 서울은 여전히 직장과 학군, 인프라가 밀집된 곳입니다. 이처럼 행정수도가 가진 땅의 힘은 강력하다 못해 절대적입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땅도 그 아성을 넘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다른 지역의 발달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땅의 위치’가 아니라, 그 땅에 내재된 ‘기회의 밀도’입니다.


판교는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논밭이었지만, 네이버·카카오 같은 IT기업이 몰리자 고소득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세종시는 중앙부처 이전과 함께 새로운 수요가 만들어지며 집값이 뛰었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 역시 황무지였지만, 스탠퍼드 대학과 벤처 자본, 혁신가들이 모여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을 키워냈습니다. 지금은 팔로앨토(실리콘밸리 핵심지)의 집값이 워싱턴 DC 핵심지보다 세 배가량 비쌉니다.


그러나 반대로 기회의 밀도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에서 멀어집니다.

2000년대 초반 웰빙 열풍 속에 양평·가평·용인 일대에 전원주택 단지가 속속 들어섰습니다. 당시만 해도 “서울 집값은 고점”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기에 많은 이들이 도시 아파트를 팔고 전원주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습니다. KB국민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아파트 값은 매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고, 강남 주요 지역은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전원생활을 택한 이들 중 상당수는 낙후된 인프라와 교육 문제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했지만, 이미 벌어진 가격 격차 때문에 복귀할 수 없었습니다.


부자는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천년을 산다는 소나무도 척박한 땅을 벗어나면 메마른 풀처럼 시듭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회의 밀도를 떠나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자일수록 더 현명한 부자 곁에 머물려 합니다.


제주 서귀포 국제중학교 인근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국제중학교라는 ‘교육 프리미엄’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와 미국식 커리큘럼도 매력적이지만, 진짜 가치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부자 네트워크’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상류층 학부모들이 자녀를 매개로 관계를 맺고, 투자 정보를 나누며, 새로운 기회를 엮어갑니다. 즉 국제중학교 인근 아파트를 산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부의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욕심이 아니라 생존 전략입니다. 저희 외삼촌 두 분은 맨손으로 중소기업을 일으켜 큰돈을 벌었지만,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한 분은 시골 땅에 큰돈을 묶으셨고, 다른 한 분은 무리한 확장으로 돈을 잃으셨습니다. 두 분 모두 한때는 부자였지만, 정작 ‘부자 공부’를 배운 적은 없었습니다. 큰돈을 벌었다면 주식·채권·금·부동산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는 단순한 방어 수단이 아니라, 큰돈을 불려주는 가장 기본적인 부의 원칙입니다. 하지만 외삼촌들은 그것을, 부자들이 서로에게서 배우듯 네트워크 속에서 익히지 못했습니다.




2. 부의 원칙 (독불 장군은 없다)


그렇다면 재벌들은 어떨까요? 얼마 전 ‘사막의 왕’이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재벌 총수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직원들에게 엉뚱한 짓을 강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꼭대기층 사무실까지 걸어서 올라가게 하거나, 하루 종일 연필로 문양을 그리게 하는 식입니다. 누가 봐도 인격을 모독하는 지시였지만, 직원들은 고액 연봉 때문에 누구도 항거하지 못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재벌은 돈으로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존재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는 내내, 저는 안타까웠습니다. 가난한 밥상에 앉아 이 드라마를 보는 어린 학생들이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가진 자들은 서민을 개돼지 취급하는구나. 자본주의 대한민국은 불공평해.

그건 과거의 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드라마가 만들어낸 허구에 진심을 다해 분노하는 순진한 시절 말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재벌총수도 부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령 삼성전자의 총수가 개인적 취향에 따라 ‘몽골의 매사냥’ 특기자를 우대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제일 먼저 기관투자자들은 시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할 것입니다. 중국 기업들은 그 틈을 타 반도체 인재들을 빼갈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주가는 폭락하고, 이사회는 회장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의 재벌은 마음대로 갑질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과 기술의 변화 그리고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인재를 등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적인 기업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크 저커버그(메타)는 평소 도널드 트럼프와 앙숙이었지만, 대통령이 되자 취임자금으로 100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자존심보다 기업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2019년 상하이 테슬라 기가팩토리 착공식에서 중국인들 앞에서 춤을 췄습니다. ‘중국 시장을 절실히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퍼포먼스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갑부이지만 기업을 위해서라면 광대짓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구 최강의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1945년,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루즈벨트는 ‘석유’의 절대적 가치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석유는 세계 안보(전쟁무기)와 세계 경제(공장과 화물선)를 동시에 움직이는 핵심 자원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자원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우디와 석유 동맹을 맺기 위해, 미군 군함 쿼인시호(USS Quincy) 갑판 위로 사우디 국왕 이븐 사우드를 초청했습니다.


승전국의 대통령이었지만, 루즈벨트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처럼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섬세한 배려로 상대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군함의 방향을 카바 신전에 맞춰 무슬림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단순한 의전 같지만, 그것은 이슬람 문화를 존중한다는 기독교 국가(미국)의 정치적 선언이었습니다. 기도용 카펫과 식사를 위한 할라 의식 공간을 마련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또한 왕의 다리 질환을 고려해 특수 휠체어를 준비했습니다. 이는 상대의 불편(약점)을 포용한다는 외교적 제스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국왕에게 DC-3 여객기를 선물하면서 별도로 회전 좌석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언제든 카바 신전을 향해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죠. 이는 왕의 신체적 불편과 이슬람 문화를 동시에 존중한, 감동 외교의 화룡점정이었습니다.


반대로 영국의 처칠은 종교적으로 술과 담배를 금하는 왕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셨습니다. 심지어 “사우디의 낙타보다 훨씬 좋은 교통수단”이라며 사우디를 깎아 내리면서 영국 자동차를 자랑했습니다.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미국은 석유 동맹을 발판으로 세계 패권을 거머쥐었고, 영국은 점차 밀려났습니다.


이후 미국은 냉전 시대에도 사우디 석유를 바탕으로 동맹국들의 산업과 군사력을 떠받쳤습니다. 이념의 전쟁에서 동맹의 힘이 곧 미국의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역시 안정적인 석유 공급 덕분에 전후 산업화를 빠르게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루즈벨트의 감동 외교는 근대 세계사뿐 아니라 한국사에도 깊은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3. 맺음말


결국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입니다. 원칙에 어긋난 태도가 영국을 패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그것은 독일 전차도, 소련의 핵미사일도 아니었습니다. 승전국의 오만이었습니다.


세계 최강의 부자도, 세계 최강의 권력자도 혼자서는 설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동맹과 동업자가 필요합니다. 부자는 결코 혼자서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드라마 속 허상만 보고 “부자는 제멋대로다, 가진 자는 불공평하다”라는 헛된 분노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만큼 인생이 낭비됩니다. 우리는 가난하기에, 오히려 부자들보다 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따라서 가난을 벗어나고 싶다면, 부자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키는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드라마 속 허구는 분노를 자극할 뿐, 부의 길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은 분노가 아니라, 기회가 숨 쉬는 밀도의 현장입니다.


만약 가난의 격차 때문에 현명한 부자를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가령, 만화방 보다는 도서관에 더 현명한 부자가 있습니다. 술 모임 보다는 독서 모임에, BJ방송 보다는 인터넷 유료 강좌에, 지방대보다는 인 서울에 더 현명한 부자가 있습니다. 군대도 병과를 지원해서 간다면, 징집을 당한 것보다는 더 현명한 부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현명한 부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현명하게 씁니다. 여러분은 부자들이 현명하게 시간을 쓰는 장소를 찾아 가면 됩니다. 정직하게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다가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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