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0년 넘게 김어준 총수의 방송을 들어왔습니다. 라디오, 팟캐스트, 유튜브, 그리고 책까지 읽었습니다. 마흔이 된 지금 그의 정치적 색깔과 제 생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는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이기 전에, ‘거래의 기술’과 ‘사업 마케팅’을 가르쳐 준 경영학개론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합니다.
첫 번째 레슨 : 거래는 ‘상대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청년 김어준(이하 ‘김총수’)이 유럽 여행 중 겪은 일화입니다.
어느 마을을 걷던 그는 쇼윈도에 걸린 휴고보스 정장에 매료되어 매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착장을 마친 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너무나 멋졌습니다.
문제는 돈. 그 옷을 사면 오늘 밤 숙박조차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양복을 샀을 때의 기쁨과, 사지 않았을 때의 후회 중 무엇이 더 큰가?”
결국 그는 후회를 택하지 않았습니다. 양복을 샀고, 그날 밤은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그는 인근 호텔 매니저를 찾아가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제가 기차역에서 관광객을 데려오겠습니다. 5명 이상이면 무료 숙식을 제공해 주시고, 그 이상은 머릿수만큼
인센티브를 주십시오. 대신 한 명도 못 데려오면 당신은 아무것도 줄 필요 없습니다.”
김총수는 협상이 잘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호텔 매니저에게는 손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하면 지출이 없고, 성공하면 머릿수대로 이익이 보장되는 거래였으니까요. 제안은 예상대로 수락되었고, 김총수는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곳, 그리고 수많은 호객꾼들이 경쟁하는 전쟁터였습니다.
훗날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협상은 상대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조건을 제시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협상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기에게만 유리한 조건을 내밀기 때문입니다.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바보는 세상에 없습니다.”
두 번째 레슨 : 자기객관화야말로 사업의 시작이다
호객 행위에 나선 그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휴고보스 정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유럽에 도착한 여행객이라면, 청바지 차림의 동양인과
휴고보스 정장을 입은 동양인 중 누구를 더 신뢰하겠습니까? 대부분은 후자일 겁니다.
그는 그 차이를 알고 있었고, 피리 부는 사내처럼 여행객을 모아 무료 숙식과 식사, 심지어 여행 경비까지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에게 문득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왜 남(호텔) 좋을 일을 하고 있지? 내가 직접 하면 되잖아.”
그 길로 그는 게스트하우스를 열었습니다. 여름휴가가 긴 유럽에서는 빈집을 구하기도 쉬웠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전략을 달리했습니다. 기차역에서 만난 가장 잘생긴 금발 청년을 직원으로 고용한 겁니다. 왜냐하면 휴고보스 정장은 동양 여성 고객을 끌어오기에 충분했지만 서양 여성 고객을 끌어오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에서 동양 남성은 인종적 편견에 있었으니깐요.
그렇다고 기분 나빠할 일은 아닙니다. 비즈니스에서 장벽을 만났다면, 맞서 싸우는 대신 우회하면 됩니다. 피켓을 들고 인권 시위를 벌일 일이 아니라는 뜻이죠. 저는 이것을 굴욕이 아니라, ‘현명한 수용’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는 기업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2024년, 한 국내 ‘암 진단’ AI 기업은 뉴질랜드에 소재한 ‘유방암 진단 플랫폼 회사’를 인수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 회사가 서양 여성들의 유방 사진을 1억 장이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과 같은 동양 기업이 직접 서양 여성의 유방을 촬영한다고 했다면, 여성단체의 거센 반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인수라는 우회 전략을 통해, 직접 확보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손에 넣은 것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객관화 전략을 펼친 것이죠.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0년대 초반, 해외 광고에서는 백인 모델만을 내세웠고, 일부 제품에서는 과감히 ‘SAMSUNG’ 로고를 지웠습니다. 당시 한국 브랜드는 ‘저렴’과 ‘모방’의 대명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삼성은 오롯이 제품의 질,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총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휴고보스 정장으로 강점을 살리고, 자신보다 잘생긴 금발 청년으로 약점을 메웠습니다.
원리는 단순하지만, 대부분은 열등감 때문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김총수는 ‘외모’와 ‘자기 존재’를 혼동하지 않았습니다.
외모는 사회가 요구하는 도구일 뿐이었고, 그는 그 도구를 열등감 없이 활용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를 막는 것은 세상의 장벽도, 부족한 능력도 아닐지 모릅니다.
진짜 벽은 스스로 만들어낸 열등감 아닐까요?
넘지 못한 게 아니라, 넘지 않겠다고 스스로 위대하게 선포한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 말입니다.
여담이지만, 김총수는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천만 원가량의 이익을 올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른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맞아, 나는 여행 중이었지.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돈을 벌고 있는 거지? 다시 길을 떠나야겠다.”
그는 모든 사업을 금발 청년에게 맡기고 다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김총수의 성공에는 또 다른 비결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거래의 기술]의 연장선이었습니다. 그는 숙박비의 10~20%를 떼어 늘 술을 사서 냉장고에 채워두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 모인 젊은 여행객들은 그 술을 꺼내 매일 밤 파티를 열었습니다. 자연스레 “그곳에선 매일 밤 파티가 열린다”는 소문이 퍼졌고, 김총수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언제나 활기가 넘쳤습니다.
즉, 그는 손님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는 혜택을 준비해두었고, 그것이 새로운 손님을 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레슨 : 신뢰야말로 최고의 마케팅이다.
게스트하우스와 더불어, 청년 김어준이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했던 일은 ‘불법 달러상’이었습니다. 환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이미 공급이 넘쳐나는 레드오션 시장이었지만, 그는 단순한 차별화의 길을 떠올렸습니다.
“불법 시장일수록 고객이 가장 갈망하는 것은 믿음이다.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수 없는 곳이라면, 사람들은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달러상을 원한다.”
그는 스스로 ‘믿을 수 있는 달러상’이 되기로 했습니다. 예상대로 입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여행객들은 조금 더 비싸더라도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김총수를 찾았습니다. 신뢰는 곧 편익이 되었고, 편익은 기꺼이 지불할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안전’이라는 가치를 가격 속에 녹여낸 것이었습니다.
이후 국내에서 펼친 사업도 같은 원리였습니다. ‘나는 꼼수다’, ‘파파이스’, ‘다스뵈이다’, ‘겸손은 힘들다’ 등으로 그는 권력과 맞섰고, 많은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그 신뢰 자본을 바탕으로 문을 연 온라인 쇼핑몰 ‘딴지 마켓’에는 무명의 중소기업 제품들이 놓였지만, 소비자들은 “딴지일보 기자들이 직접 검증했다”는 한 줄만으로 구매를 결정했습니다. 김총수가 쌓아 올린 신뢰를, 이름 없는 기업의 제품에 이식한 것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김어준의 행보를 꿰뚫는 키워드는 ‘상생’이었습니다. 호텔 매니저에게 손해 없는 거래 조건을 제시했고,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술을 제공해 손님들이 스스로 홍보를 하게 만들었으며, 달러상에서는 고객이 안심할 수 있는 신뢰를 팔았습니다. 결국 모든 전략은 ‘나도 좋고, 너도 좋은’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반대로, 가난의 사고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작은 손해를 참지 못합니다. “베풀면 손해다, 내가 가난한데 누구를 도와? 받은 만큼만 일하면 되지, 내가 왜 저 사람까지 챙겨야 하지?”라는 방어적 태도에 머물러 버립니다. 그래서 작은 손해 뒤에 오는 더 큰 보상을 보지 못합니다. 저는 돈에 대한 이 부족한 상상력이 바로 ‘가난의 티’,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난한 거 티네?” 할 때의 그 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가난의 티를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남을 돕는 한 청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저축한 돈도 없고, 나이 탓에 저임금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늘 교회 헌금을 내고 주변인을 챙겼습니다. 저에게는 퇴사 선물로 10만 원 남짓한 가방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돈 대신 사람을 남겼습니다. 길거리 걸인에게 돈을 건네며 그 손을 한 번 잡아보는 것이 그의 작은 목표였습니다. 그 청년은 이타적인 행동으로 부의 그릇을 넓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순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야망이 크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돈을 사랑했고, 큰돈을 벌고 싶어 했습니다. 다만 일찍이 깨달았습니다. “부자는 절대로 혼자서 될 수 없다”는 부의 매커니즘을.
김어준의 사업 철학도 바로 그 지점에 있었습니다. 상대가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래 조건, 스스로의 약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힘을 빌리는 자기객관화, 그리고 무엇보다 신뢰를 기반으로 한 상생. 저는 이 세 가지를 김총수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교훈은 결국 하나의 진실로 귀결됩니다. 부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가난의 티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명품 가방이 아닙니다. 작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더 큰 이익을 불러오, 부의 그릇을 넓히는 태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