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언어입니다. 반복 학습만 해도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자의 교육 자산 중, 영어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언어는 늦게 시작해도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고,
노력의 편차가 가장 정직하게 반영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학과 과학은 다릅니다.
암기만으로 넘을 수 없는, 이해와 논리의 관문이고, 개인차가 분명한 영역입니다.
누구에게나 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수학과 과학은 단순한 과목이 아니라 기술 문명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근·현대의 기술 문명을 떠올려 보십시오.
증기기관은 열역학에서, 전기는 맥스웰 방정식에서 태어났습니다.
컴퓨터와 인터넷 역시 이론물리·수학·전기공학이라는
기초 학문들이 서로 융합되어 만들어진 기술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과목은 단순한 학문을 넘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전략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영리하게 활용한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유진영을 안정시키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는 석유, 다른 하나는 기술 표준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국방과 산업의 동력은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습니다.
자동차와 탱크, 화물선과 군함, 항공기와 전투기, 공장과 발전소까지...
국가의 힘은 결국 얼마나 안정적인 석유망을 갖고 있는가로 결정되었습니다.
미국은 이 점을 일찍 깨닫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전략적 동맹을 맺습니다.
사우디는 석유를, 미국은 안보를 제공하는 관계였습니다.
이 협력은 훗날 페트로달러 시스템(석유 거래 통화 = 달러)으로 이어졌고,
석유의 가격·결제·거래 구조까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즉 미국은 단순히 석유를 확보한 것이 아니라,
석유 생태계를 설계한 나라였습니다.
동시에 미국은 세계가 따르는 기술 표준을 만들어냈습니다.
전력망 주파수(60Hz), 항공기 엔진 규격, GPS, 인터넷 프로토콜(IP), DNS, HTML, HTTP/HTTPS, 이더넷, 블루투스, 와이파이, 스마트폰 OS, 4G·5G 통신 규격, 반도체 ISA(x86·ARM), 클라우드 인프라(AWS·Azure), 암호화 기술(AES·SHA·TLS), 디지털 결제(EMV), 스트리밍 규격(HLS)…
일상과 산업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기술의 근본 표준을 미국이 설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이 기술을 숨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동맹국에게 적극적으로 공개했습니다.
그 이유는 동맹국이 부유해져야 무기를 구매할 수 있고,
경제가 성장해야 자유진영의 힘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맹국들의 경제성장(석유 공급 및 기술 보급) = 자유진영의 군사력 증가
적국의 경제쇠퇴(수출통제, 외교 고립) = 공산진영의 군사력 약화
이 단순한 전략은 냉전 기간 동안 압도적 효과를 발휘했고,
미국은 큰 포성 없이도 패권을 유지했습니다.
총보다 기술, 강제보다 세계화, 무력보다 생태계 설계로 국제 질서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반에는 수학과 과학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미국은 AI라는 새로운 전장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경쟁 상대는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입니다.
중국은 전기차·로봇·반도체·AI 같은 백년대계 산업을 국가 주도로 정교하게 밀어붙여 왔습니다.
보조금·저리 대출·규제 완화·토지 제공 등 전방위 지원으로 단기간에 기술을 끌어올렸습니다.
위협을 느낀 미국은 2017년 반도체 관세, 2022년 CHIPS법, 2024년 인텔 직접 투자까지
중국의 AI 성장을 억제하고 자국의 AI 반도체 자립을 위해 시장에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도체가 곧 AI이며,
AI 주도권을 빼앗기는 순간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
라는 것을 수년 전부터 인지하고 실행에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중심에 ‘엔비디아의 GPU’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GPU가 AI 시대의 석유이자, 기술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GPU는 AI의 뇌세포입니다.
GPU의 성능과 수량이 높을수록, AI는 더 빠르게 학습하고 더 정교하게 판단합니다.
마치, 뇌세포가 많을수록 인간의 지능이 높아지듯, AI의 지능 역시 GPU가 결정합니다.
그런데 GPU는 소모품이며, 고부하 연산을 위해 몇 년 주기로 교체해야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점 때문에 GPU는 석유처럼 전략 자원이 될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석유를 계속 채워 넣어야 하듯, AI 데이터센터도 GPU를 계속 교체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는 미국정부 에게 강력한 AI 통제력을 제공합니다.
미국 정부는 GPU 수출 규제와 공급 조절만으로, 동맹국들의 AI 산업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엔비디아 GPU가 하드웨어–CUDA 생태계–AI 플랫폼으로 이어지는 3중 락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3중 락인이 엔비디아 GPU를 AI 시대의 사실상 기술 표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첫 번째 락인. 압도적인 하드웨어 성능
데이터센터용 AI GPU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점유율과 성능 모두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규모 병렬처리, GPU 간 고속 통신(NVLink·InfiniBand), 전력 대비 연산량….
대부분의 벤치마크에서 엔비디아는 가장 앞서 있습니다.
젠슨 황 CEO가 ‘성능’을 가장 자신 있게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락인. CUDA 생태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윈도우라는 운영체계 안에서 돌아가듯,
다양한 AI 프로그램들은 CUDA라는 환경을 통해 GPU에게 일을 시킵니다.
결국 엔비디아 GPU의 성능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CUDA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2006년 CUDA가 공개된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AI 연구자와 개발자들은 대부분 CUDA 기반으로 AI 모델을 학습하고 실험해 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논문 코드와 라이브러리 같은 기초 데이터가 CUDA 방식으로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엔지니어들이 이미 CUDA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마치 ‘엑셀’을 한 번 배우고 나면 다른 스프레드시트를 굳이 새로 배우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락인. AI 플랫폼
엔비디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CUDA 생태계 안에 각 산업별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자율주행(Drive), 로봇(Isaac), 의료 AI·헬스케어(Clara/Holoscan),
산업 시뮬레이션(Omniverse), AI 슈퍼컴퓨터(DGX), AI 팩토리 등
이미 20개가 넘는 플랫폼이 제공되고 있으며, 상당수가 오픈소스(무료)입니다.
결론적으로
AI 기업이 엔비디아의 GPU를 사용하면
하드웨어 성능 – CUDA 생태계 – AI 플랫폼을 한 번에 확보하게 됩니다.
이는 중소 AI 업체에게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가져오고,
엔비디아는 전 세계 AI 기업을 CUDA 생태계에 묶어둘 수 있게 됩니다.
이 구조는 과거 미국이 GPS, 인터넷 프로토콜, 스마트폰 OS, 블루투스, 와이파이 같은
기술 표준을 선점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에도 분명한 약점이 있습니다.
기술과 표준을 장악했지만,
그 기술을 실제로 구현할 숙련된 기술자와 엔지니어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미국 제조업 고용 비중은 약 8%, 반면 서비스업 비중은 70% 이상입니다.
젊은 세대는 더 편하고 유연한 서비스 직종을 선호합니다.
반대로 중국은 ‘공대에 미친 나라’입니다.
매년 공학 학사 150만 명, 석사 40만 명, 박사 6만 명이 배출되며
제조업 고용 비중은 30%에 육박합니다.
미국보다 3~4배 높은 수치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AI가 소프트웨어 산업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반도체·전력·냉각·서버·공장·희토류·원자력 같은
거대한 하드웨어 기반이 놓여 있습니다.
AI 경쟁은 결국 반도체·전력·제조·엔지니어링·물류의 종합전입니다.
다시 말해, 수학과 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술 인재의 싸움입니다.
참고로 한국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약 15% 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미국보다는 높지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 역시 유럽 여러 국가들처럼
성장 동력이 사라지고 경제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교육 수준이 높다는 말은 아이들의 작문 실력이나 예술 감성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수학과 과학 역량이 높다는 의미입니다.
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따르면,
수학·과학 점수가 50점 오르면 1인당 GDP는 평균 6~8% 증가합니다.
또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STEM 전공자의 연봉은 비-STEM보다 20~30% 높고,
실업률은 절반 이하라고 합니다.
즉, 수학과 과학 역량이 곧 국가와 개인의 자본주의 생존력입니다.
그래서 수학과 과학이 부자의 교육자산입니다.
(여담) 엔비디아 언급에 대하여
이 글에서 엔비디아를 예로 들었지만, 그것이 미래의 주가를 보장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왕좌의 위치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엔비디아의 GPU가 미국의 전략 자산이 될 가능성은 높지만,
기술 흐름과 주가 흐름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앞으로도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구글 등 세계 0.1% 부자들이 집중하는 핵심 기업들을 언급하겠지만,
이는 투자 조언이 아니라 세계 자본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