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인생을 바꾼 고교동창 이야기 (대의 명문은 개나줘버려)
20년 만의 동창회에서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거의 친분이 없었지만, 미혼이라는 공통점과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주말에 따로 만나 커피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친구는 현재 식품회사 신사업팀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직함은 평범하지만, 살아온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외국에 오래 있었다며?”
제가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도, 라오스에서도 요리사로 꽤 오래 일했지. 지금은 한국에서 대학원 다니면서 일하고 있어. 기회가 되면 또 해외로 뜰 생각이야.”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긴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는 낯선 미국으로 향했다고 했습니다.
“지방대를 나와서 취업할 곳이 어디 있겠어? 그래서 그냥 갔어. 영어보다 미국을 배우고 싶었거든.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보수 성향이 강했어. 그래서 자본주의 본토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지.”
그의 출국은 어학연수가 아니라 정착(이민)을 전제로 한 출국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지원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어머니가 건넨 정착금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일자리부터 구했고, 틈틈이 어학당을 다녔습니다. 먹고, 입고, 씻기 위해선 영어가 필요했습니다. 칫솔 하나, 비누 하나에도 세금이 붙듯 생활의 모든 순간에 영어가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현지에서 배우는 영어는 달랐습니다.
배운 단어를 곧바로 써먹을 수 있으니 공부가 재미있었고, 작은 성취감이 반복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느낀 배움의 기쁨이 훗날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고 했습니다.
그가 가장 오래 일한 곳은 나이키 매장이었습니다.
현지인을 상대로 운동화를 팔며 처음으로 ‘미국에 오래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영어 선생님께 혼나던 낙제생이 이제는 미국인에게 운동화를 팔고 있었으니까요. 그때부터 그는 이방인에서 현지인으로 변해갔습니다.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옮기며, 꿈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꿈은 요리사였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강신주 작가의 ‘여행’에 대한 강연이 떠올렸습니다.
“여러분 여행을 떠날 때면 그 나라에 잠시 머물 생각하지 말고 평생 살 각오로 떠나세요.”
그때는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를 보며 깨달았습니다.
그가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미국에 갔다면 영어만 배웠을 겁니다. 그러나 정착할 각오로 떠났기에 요리사라는 꿈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는 주방에서 샐러리를 다듬고 접시를 닦으며 요리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라오스로 가지 않겠냐?”
하지만 그에게 이념도, 국경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시카고의 이름 모를 마을이나 경북의 읍내나 라오스의 방비엥 모두 ‘사람이 사는 마을’일 뿐이었습니다.
저에게 ‘세상’은 여전히 ‘대한민국’이었지만, 그에게 세상은 ‘지구’ 그 자체였습니다.
같은 대명사이지만, 생각의 반경이 달랐습니다.
라오스에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달러의 가치’ 였습니다.
“나는 라오스에서 달러로 월급을 받았어. 그 나라 화폐가 너무 불안정해서, 회사에서도 달러로 지급했지.”
그는 생필품을 살 때마다 세 가지 화폐를 머릿속에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라오스 화폐, 원화, 그리고 달러. 시간이 지나자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상엔 많은 화폐가 있지만, 진짜 화폐는 달러 하나뿐이야. 나머지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더라고.”
저는 부자들이 왜? 어린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영어 때문만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와 달러의 가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는 지금도 한국에서 번 원화를 달러로 바꿔둔다고 했습니다. 제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달러로만 쌓아두지 말고 미국 국채를 사는 게 어때? 달러엔 이자가 안 붙잖아.”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금융에 관한 조언을 하면 종종 돌아오는 표정이 있습니다.
‘네가 얼마나 잘났어? 내 돈은 내가 알아서 할게.’
하지만 그는 달랐습니다. 진지하게 듣더니 매입 시기를 물었습니다.
“지금, 미국채 금리가 5%는 흔치 않은 기회야”
그랬더니 그는 웃으며 화답했습니다.
“좋은 정보네. 대신 나도 하나 조언할게. 나 이번 주에 일본 간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대학원에서 호텔경영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소비자 트렌드 조사를 위해 도쿄로 간다고 했습니다.
“ 트렌드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백화점이 좋아. 거기엔 모든 계층의 소비가 층별로 정리돼 있거든. 어떤 브랜드가 뜨는지, 어떤 색이 유행인지 이미 다 구조화돼 있어. MD들이 엄선해서 입점시킨 곳이니까. 그 문턱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트렌드야.”
그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일본 간다 하면 ‘고작 그거 조사하러 일본식이나 가냐’고 비꼬아. 그런데 요즘 일본행 티켓이 10만 원 안팎이야. 에어비앤비면 숙소도 5만 원이면 돼. 15만 원이면 일본을 다녀올 수 있어. 제주도보다 싸고, 서울에서 대구 가는 것보다도 가까워. 그러니까 ‘일본식이나’가 아니라, 그냥 일본이야.”
그리고 진짜 조언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전할 때 꼭 그럴듯한 명분을 찾아.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타인까지 설득하려고 하지.
‘너 그거 해서 뭐가 남는데?’ 이런 물음에 스스로를 가두는 거야.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해. 대의명분은 개나 줘버려.”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미국 갈 때도 다들 물었어. ‘목적도 없이 왜 가냐’고.
하지만 나는 영어를 배웠고, 요리사라는 꿈을 찾았고, 결국 그걸 이루었어. 영어와 요리가 되니까 한국에서 취업도 쉬웠지. 지금은 대학원에서 호텔경영을 배우고 있어.
마흔에 대학원 다닌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은 학자금 대출 이자가 싸. 따지고 보면 무리가 아니야. 정말 중요한 건 명분이 아니라 시간이지. 도전하지 않으면 시간은 그냥 흘러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죽을 생각은 없어. 대학원 끝나면 외국 회사에 지원할 거야. 너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대학원 한 번 알아봐. 너의 인생을 바꿔 줄 수도 있어.”
그 말에는 허풍이 없었습니다. 그의 말 중 반은 이미 실행했고, 나머지 반은 실행 중이었으니까요. 저 역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첫째, 대의명분은 개나줘 버려라.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거창한 명분은 필요 없습니다. 부모나 타인을 설득할 이유도, 반드시 이득을 봐야 한다는 불안감도 불필요 했습니다. 또한 명분이 작을수록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명분이 클수록 허황된 목표를 찾는 다는 것입니다.
법륜 스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이 태어난 거창한 이유를 찾지 마세요. 인간은 그냥 태어난 겁니다. 다만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저마다의 의미를 찾는 거죠.”
친구의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도전에 거창한 명분을 찾지 마세요. 도전하다 보면,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나의 명분이 돼요.”
둘째, 한국에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서 죽을 이유는 없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구는 좁아졌습니다. 지구반대편의 사람과 일하고 하루 만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영어만 가능하다면 세계 어디서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직장도, 인연도, 운명도 모두 다른 나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끝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했습니다.
‘ 우리의 삶은 명분을 핑계로 너무 자주 멈추는구나.’
조금 더 준비하면 마음이 덜 불안할 거라 믿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시간은 나를 침식시키며 흘러갑니다.
그 친구는 그 시간을 붙잡았습니다. 완벽한 이유를 찾기보다, 어설퍼도 지금 가능한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대의명분은 개나 줘버리세요.
그 순간, 당신의 도전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