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전장에서는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검과 창술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면,
오늘날의 전사들은 정갈한 수트를 입고 프리젠테이션(PT)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저는 제안서 발표 현장에서 후임이 선임을 압도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그때마다 강렬한 전율과 함께 이런 확신이 들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직장인들이 계급장을 떼고 맞붙는 진검승부구나.
발표를 앞둔 이들의 얼굴에는 검투사와 같은 비장함이 감돕니다. 폭력이 통제된 법치국가에서 좀처럼 맛보기 힘든, 날것 그대로의 긴장감입니다. 발표자는 이 압박을 견디며 자신의 제안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심사위원이 단 몇 명일지라도, 그 문턱을 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남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 있고, 절대 맡겨서는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은 후자입니다. 내 발표를 남에게 맡기는 순간, 공적도 기회도 함께 넘어갑니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발표를 피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타인의 뒤에 숨는 순간, 승진의 자리는 그 사람의 몫이 됩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세계적인 기업의 수장들도 IR 발표 날이면 직접 단상에 오릅니다. 이유는 내 회사, 내 프로젝트, 내 꿈이기 때문입니다. 발표를 남에게 맡기면, 세상은 더 이상 ‘내 것’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프리젠테이션은 이토록 중요한 능력이 되었을까요?
믿기 힘들겠지만, 19세기 초반 뉴욕의 금융 시장은 무법천지에 가까웠습니다.
감독기관이 없던 시절, 분쟁은 협박과 폭력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금융뿐 아니라 석유와 철도 같은 거대한 산업 현장에서는 방화와 살인까지 벌어졌습니다.
이후 폭력의 시대가 지나고 법치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방식이 바뀌었을 뿐입니다. ‘권력’ 대신 ‘다수결’, 폭력 대신 ‘설득력’이 등장했습니다.
사회가 민주화되고 공정해질수록, 의사결정은 폭력이 아니라 합의로 이루어집니다.
과거에는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물리력을 총동원했다면, 오늘날에는 설득력으로 이를 쟁취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전사들이 정치인입니다. 그들은 대중 연설과 공개 토론이라는 전투에서 국민을 설득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설득한 쪽이, 모든 권력을 가져갑니다. 승자독식의 구조입니다.
직장인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기업과 관공서는 내부 경쟁 PT로 프로젝트의 주인을 정하고,
중소기업은 외부 경쟁 PT로 회사의 사활이 걸린 일감을 따냅니다.
게임의 규칙은 동일합니다. 더 많이 설득한 쪽이 전부를 가져갑니다.
결국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설득력’이 강자의 힘이자, 싸움의 방식입니다.
반대로 가난의 밥상에서 난무하는 폭력과 폭언은 약자들의 힘이자, 싸움 방식입니다.
마흔이 넘어서도 힘자랑을 하는 친구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고, 무대와 경쟁 자체가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밥상을 걷어차기 위해서는 약자의 싸움이 아니라 강자의 싸움 방식을 연습해야 합니다.
소년 제임스 개츠가 훗날 위대한 개츠비가 되기 위해 매일 ‘웅변과 예의범절’을 연습했듯이,
우리 역시 설득의 언어를 갈고닦아야 합니다.
도서관에는 브랜딩, 컨셉, 마케팅, 스피치 등 제안서를 쓰는 데 참고할 만한 책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저는 딱 두 가지만 저의 노하우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왜?’ 다른 하나는
‘그럴듯한 것 말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원칙인 ‘왜’는 제가 사회초년생 시절, TBWA에서 일하던 3년 차 카피라이터 형에게 배운 것입니다. 제안서의 방향을 잡지 못해 끙끙대던 저에게 형은 이렇게 조언을 했습니다.
“왜?를 끝까지 추적해 봐.”
형의 말을 빌리자면, 프리젠테이션은 눈앞에 있는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과정입니다.
소비자보다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통과해야하죠. 그런데 이들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물음표만 자리합니다.
왜 이런 콘셉트를 택했을까?
왜 이런 디자인을 준비했을까?
왜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할까?
그들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에 의문을 가집니다. 그래서 발표자는, 그들의 머릿속에 맴돌 만한 모든 ‘왜?’를 예상하고 그에 합당한 답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수백 가지의 ‘왜’가 소진되는 순간, 제안서는 자연스럽게 완성됩니다.
예를 들어 콘셉트를 ‘우산’으로 정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같은 우산이지만 색과 형태에 따라 수백 가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시대, 장소, 계절, 모델에 따라서도 분위기는 천차만별 달라집니다.
즉, 왜 그런 색깔이어야 하는지, 왜 그런 형태여야 하는지, 왜 그 시대·장소·계절이어야 하는지, 왜 그 모델(성별 포함)이어야 하는지. 모든 것에 분명한 이유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당시 저는 [왕십리 1구역 아파트 외장 디자인 제안서]를 쓰고 있었습니다. 제안의 이유를 적어야 했지만, 솔직한 심정은 “팀장님이 시키셨으니까”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형의 조언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아니라, ‘클라이언트가 나를 채택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저는 그 ‘왜’에 대한 답이자 콘셉트를 ‘노스탤지어(향수)’로 잡았습니다.
신문 기사를 검색해 본 결과, 왕십리 거주민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습니다. 왕십리를 ‘서울 속 고향’으로 여기고 있었죠. 심사위원단 역시 50명의 주민 대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청계천의 돌담, 나무, 강변 등 옛 정취를 모티브로 디자인을 풀었습니다. 첫 제안서였지만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로 ‘왜’의 원칙은 제 제안서의 근본이 되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인 ‘그럴듯한 것 말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김경주 시인에게 배운 가르침입니다. 홍대 상상마당에서 그분의 작법 수업을 들을 때였습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단어 암기가 기본이듯, 글을 잘 쓰려면 국어 단어 채집이 필수입니다.”
국어사전을 펼쳐 매일 마음에 드는 단어 10개를 채집하면, 1년이면 3,650개, 10년이면 36,500개의 단어가 몸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서너 권의 국어사전은 물론 북한어 사전까지 펼쳐 놓고 매일 공부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쓰다 보면 마음에 꼭 드는 시어를 찾지 못하는 날이 많다고 했습니다. 사흘 밤낮을 국어사전과 씨름하다가, 끝내 단어 하나를 찾지 못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마치 짝사랑하던 연인의 마음을 끝끝내 얻지 못한 청년처럼 말이죠.
그것은 단순히 ‘멋져 보이는’ 표현이 아니라,
그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진정성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동안 ‘왜’를 고민하는 척하다가, 적당히 끼워 넣는 방식으로 타협해 왔기 때문입니다. 첫 제안서 이후로 단 한 번도 치열하게 덤비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제 제안서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제안서를 쓸 때 두 가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왜’를 집요하게 추적하여 논리의 빈틈을 없애라.
둘째, ‘그럴듯한 것’에 타협하지 말고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담아라.
하지만 이 원칙을 알았다고 해서 내공이 금방 쌓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죠.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완벽하게 체화한 위대한 고수 한 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곳은 회의실이 아닌, 어느 무대 위였습니다.
그 고수의 이름은, 바로 소프라노 조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