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정직한 자기계발서

by 이영우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지성’에 대한 명언을 남깁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지성이란,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고도
흔들림 없이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는 더 옳아 보이는 쪽이나, 더 이익이 되는 쪽을 골라잡는 능력 보다,

서로 대립하는 모순된 입장을 동시에 수용하는 포용력을 최고의 지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소설의 첫 장, 첫 문장에 그 지성으로 향하는 ‘지혜의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닉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교훈입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너와 같은 조건과 기회를 가진 건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생각해 보아라.


피츠제럴드가 열어 둔 지혜의 문은 2,5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일화를 각색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부처님을 찾아와 하소연을 합니다.

“세존(부처님)이시어, 필란다바차는 수행자임에도 말이 너무 거칩니다. 만날 때마다 우리를 하대하고 ‘천한 놈’이라 부르며 모욕을 줍니다. 함께 수행하다 보면 도리어 마음에 상처만 입습니다. 그를 엄히 꾸짖으시거나, 차라리 내쫓아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께서 이렇게 답합니다.

“그대들이여, 필란다바차에게는 너희를 미워하거나 괄시하려는 악한 마음이 없다. 다만 그는 지난 500번의 생(生) 동안 높은 계급의 바라문으로 살아왔다. 남을 내려다보고 거칠게 부르던 습관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 또한 그 못난 기운을 버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 중이니, 너희가 자비로움으로 이해해 주어라.”


그러자 제자 중 한 명이 억울하다며 다시 묻습니다,

“세존이시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저희에게는 늘 ‘고운 말, 바른말’을 쓰라고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저 사람의 욕설은 ‘그냥 습관이니 너희가 참아라’ 하십니까? 그가 고쳐야 할 문제를 왜 저희가 감내해야 합니까?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부처님이 빙그레 웃으며 답하십니다.

“그대는 지금, ‘내가 옳고 저 사람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 수행하는가?
아니면 ‘내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 수행하는가? 그대는 왜, 수행을 하는가?”



이 가르침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언행도 상대방의 절박한 사정과 지난 삶의 궤적을 알게 되면

어느 정도 수용이 가능해진다는 삶의 지혜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삶의 지혜가 진짜 빛을 발하는 순간은 타인을 심판할 때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평온을 지키기 위해 쓸 때라는 뜻입니다.


피츠제럴드 역시 이 두 가지 가르침을 소설의 입구, 즉 닉의 아버지의 입을 빌려 심어두었습니다. 작가의 마음을 추측해 보자면, 어쩌면 이런 말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범죄로 막대한 부를 일군 한 사내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부디, 당신의 도덕적 잣대를 잠시만 내려놓아 보세요.
제가 왜 개츠비를 ‘성공한 사업가’가 아닌 ‘범죄자’로 설정했는지,
그 너머의 메시지를 읽어주길 바랍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독자는 끝내 개츠비를 이렇게 평가하게 됩니다.

“순수했지만, 야망에 눈이 멀어 범죄를 저지른 인물.”


그러나 이 장치를 이해한 독자들은 이 소설을 다르게 해석합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도 정직한 자기개발서”




이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어가 보겠습니다.

개츠비는 ‘돈’ 앞에서 두 번의 결정적인 좌절을 겪습니다.

스승 같았던 부자 노인 댄 코디에게서 단 한 푼의 유산도 받지 못했을 때 (댄 코디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너무나 사랑하는 데이지를 가난 때문에 놓쳐버렸을 때입니다.


이 실패들은 청년 개츠비에게 잔인한 확신을 남깁니다.

“부가 없으면, 사랑도 선택권도 가질 수 없다.”


이후 개츠비는 여느 자기계발서의 주인공처럼 성공에 홀린 듯 부(富)를 좇았고, 마침내 그것을 손에 넣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그 숨은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이 바로 그의 서재입니다.


서재의 책들은 모두 진짜였지만, 단 한 장도 페이지가 잘려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책을 읽으려면 윗단을 칼로 잘라야 했죠. 책을 살 돈은 가졌으되, 그 책이 상징하는 지식과 품격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개츠비의 약점을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작가는 집요할 정도로 개츠비를 ‘진짜냐, 가짜냐’의 시험대에 올려놓고서 괴롭힙니다.

범죄로 일군 부끄러운 돈, 영국 상류층을 흉내 내는 어색한 말투인 ‘올드 스포츠’,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기엔 지나치게 화려한 분홍색 정장…. 개츠비는 눈물겹도록 자신을 포장하지만, 매서운 상류층들의 시선 앞에서 그 포장지가 번번이 찢겨져 나갑니다.


사실, 이 서사는 작가 본인의 시련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부잣집 자제들 사이에서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늘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때 만난 첫사랑이 시카고 금융가 집안의 딸, 지네브라 킹(Ginevra King)이었죠. 그녀의 아버지는 피츠제럴드에게 이런 잔인한 말을 남깁니다.

"가난한 집 아들은 부잣집 딸과 결혼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후 만난 아내 젤다(Zelda) 역시 남부의 상류층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그가 가난할 때는 약혼을 파기했습니다. 피츠제럴드가 첫 소설 『낙원의 이쪽』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고 나서야 비로소 결혼을 승낙했죠. 마치 개츠비의 값비싼 셔츠들을 보고서 환희를 느끼는 데이지처럼요.


결혼 후 두 사람은 뉴욕 인근 롱아일랜드(소설 속 웨스트에그의 모델)에서 매일 밤처럼 파티를 열며 돈을 물 쓰듯 썼습니다. 그리고 2~3년이 지나자 피츠제럴드는 깨닫습니다. 그토록 열망했던 상류층의 삶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들은 화려하고 고급스러웠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도덕적으로 파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이 지점에 최고의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개츠비가 갈망했던 성공의 상징이자 상류사회 그 자체로 여겼던 데이지가, 사실은 소설 속에서 가장 속물적인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데이지는 언제나 사랑받아 왔기에, 누구를 위해서도 희생하지 않는 어른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마치 가장 고귀한 계급에서 살아온 필란다바차가 오히려 가장 거친 말버릇을 지녔던 것처럼요.


작가는 데이지라는 인물을 통해 상류사회의 치부를 드러냅니다. 고발이라기보다, 텅 빈 허무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습니다. 도대체 개츠비의 무엇이 위대한가?

그의 성공 방식은 범죄였고, 그가 붙잡으려던 성공(데이지)도 가짜라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위대한 개츠비’라 불러야 할까요?


그 답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발견됩니다.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소년 ‘제임스 개츠’가 낡은 책 뒷장에 빼곡히 적어둔 생활 루틴(Routine).입니다.


시간표 (SCHEDULE)

오전 6:00 — 기상

오전 6:15~6:30 — 아령 들기와 담벼락 타기

오전 7:10~8:10 — 공부 (수학 등등)

오전 8:30~오후 4:30 — 일하기

오후 4:30~5:00 — 야구와 운동

오후 5:00~6:00 — 발성 연습과 예절 공부

오후 7:00~9:00 — 유익한 발명품들 공부하기


일반적 결심들 (GENERAL RESOLVES)

1. 샤프터즈(Shafters)나 이름 없는 곳에서 시간 낭비하지 않기.

2. 담배를 피우거나 씹지 않기.

3. 이틀에 한 번씩 목욕하기.

4. 이틀마다 한 권씩 유익한 책이나 잡지 읽기.

5. 매주 5달러(또는 3달러)씩 저축하기.

6. 부모님께 더 잘하기.


가난한 자의 야망은 ‘사치’가 아니라, ‘사기’에 가깝습니다.

세상을 속이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부터 속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허름한 방바닥에서 아침을 맞으면서도,

언젠가 세상 가장 아름답고 품위 있게 살아갈 거라고

거짓에 가까운 희망을 품어야 합니다.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고 수군댈 정도로,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희망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매일 아령을 들고 담벼락을 오릅니다.

집안 형편상 학업은 어렵지만, 언젠가 옥스퍼드 대학교에 입학하리라는 확신으로

혼자서 수학과 언어를 붙잡고 씨름합니다.


상류층 자제들과 어울릴 날을 떠올리며 웅변과 예절을 연습하고,

명예뿐 아니라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해 새로운 과학 기술과 유행하는 사조들을 공부합니다.

무엇보다, 늘 청결을 지키고 술과 담배와 잡담을 멀리합니다.


그렇게 금욕적이고 발전적인 삶을 통해 개츠비는 매일 조금씩 자신을 속입니다.

언젠가 세상 전체를 속일 만큼, 설득력이 높은 인물이 될 때까지 말이죠.


사실 저 역시 학벌도, 번듯한 직업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가난의 밥상을 걷어차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두렵습니다. 제 삶을 온전히 증명해 내기 전까지는, 지금의 저는 개츠비처럼 그저 성공에 목마른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난한 밥상에서 자라 위를 향해 걷기 시작한 사람들이

숙명처럼 짊어지고 가는 근원적인 불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챕터를 완성할 때마다 마음이 요동칩니다.

‘이 글이 허황된 건 아닐까.’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 떠드는 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의심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지성이란,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품고도

흔들림 없이 기능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뒷문장입니다.

가령, 상황이 전혀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반드시 바꾸겠다고 결심할 수 있어야 한다.


저에게 이 두 문장은 이렇게 들립니다.

가망 없어 보이는 먼 미래를 꿈꾸면서도 오늘 하루는 실현 가능한 계획표 속에서,

누구보다 기쁘게 살아가라고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남자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소설가 하루키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위대한 개츠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기나긴 이별』을 꼽았습니다.

그리고 그중 단 한 권만 선택해야 한다면

주저 없이 『위대한 개츠비』를 고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열혈한 피츠제널드의 신봉자이자,

동시에 루틴의 신봉자이기도 합니다.


하루키는 루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글을 씁니다.
낮에는 10킬로미터를 달리거나 1500미터를 수영하고, 책을 조금 읽고 음악을 듣고 밤 아홉 시에 잠자리에 듭니다. 이 루틴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합니다. 반복 그 자체가 중요해집니다.
일종의 자기 최면이지요.”

문예지 《The Paris Review》 2004년 여름호


그의 하루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글쓰기 - 운동 - 휴식 - 수면.


이 단순한 사이클을 그는 수십 년 동안 거의 흐트러짐 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작가로서의 성장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일관된 습관이 만든 결과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키는 스스로를 특별한 예술가라기보다 매일의 노동을 반복하는 사람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묵묵히 문장을 쌓아 올리는 사람 말입니다.


개츠비의 낡은 공책 속 루틴도, 하루키의 시간표도,

그리고 제가 매일 네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 습관도,

어쩌면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망 없어 보이는 현실 앞에서도,
오늘의 루틴만큼은 포기하지 말라.


초록색 불빛은 언제나 저 멀리에 있지만, 우리의 손을 끝까지 뻗게 만드는 힘은

언제나 발밑에서, 아주 소박한 일정표의 형태로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손에 닿지 않는 큰 꿈은, 손에 잡히는 매일의 루틴에서 탄생한다는

작은 진리를 남기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 합니다.


당신의 루틴은 무엇인가요?


저는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지만,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씁니다.

언젠가 이 시간들이 제 삶을 조용히 증명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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