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의 최고의 프리젠테이션 (2부)

by 이영우

세 번째. 내 인생 최고의 프리젠테이션


넷플릭스의 음악 프로그램 [테이크 원]에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단 한 곡을 고르기 위해 며칠 밤낮을 고뇌합니다. 제작진이 던진 미션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가혹했기 때문입니다.


“비용, 장소, 의상, 관객까지 모든 것을 당신 마음대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단, 오직 한 곡만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중가요부터 오페라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그에게 ‘단 한 곡’만 선택하라는 것은, 무한한 자유가 아니라 치명적인 제약이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가장 먼저 ‘소비자’를 정의합니다. 대상이 분명해야 그에 맞는 전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조수미 역시 곡을 고르기 전에 관객부터 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후원하는 보육원 아이들을 객석에 앉히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왜 이 노래를, 왜 이 아이들 앞에서, 나 조수미가 불러야 하는가?”


그가 찾는 것은 ‘그럴듯한 명곡’이나 ‘기교를 과시할 수 있는 난이도 높은 곡’이 아니었습니다. 조수미여야만 하는 노래, 이 노래가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는 노래. 다시 말해, 그럴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담긴 곡이었습니다.


마침내 그가 선택한 곡은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였습니다.

올랭피아는 태엽 감는 인형에 불과했지만, 아름다운 노래로 시인 호프만을 매료시킵니다. 이는 어린 동양인 소녀에 불과했던 자신이 거장의 선택을 받아 세계 무대로 나아갔던 서사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습니다. 이 서사는 다른 여성 성악가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노래가 ‘한국인 출신의 디바’ 조수미의 것이어야 하는가? 왜 하필 조수미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는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서양의 인형 올랭피아를 한국의 전통 ‘꼭두각시’로 재해석해 무대를 설계합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뿐 아니라, 어린 관객의 눈높이까지 고려한 결정이었습니다. 무대 장치와 의상 역시 자연스럽게 한복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세계적인 프리마돈나라는 위치와 서사,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어린 관객. 흩어져 있던 맥락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그는 ‘그럴듯한 무대’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고뇌는 지휘자 장한나의 인터뷰에서도 발견됩니다. 그는 “클래식 악보에는 소리가 없기 때문에, 지휘자는 음표 하나하나에 붙어 있는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는 취지로 인터뷰를 한적이 있습니다. 즉, 귀를 만족시키는 그럴듯한 선율이 아니라 심장을 파고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선율’을 찾아내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었죠.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에서 안성재 셰프도 요리 참가자에게 반드시 질문합니다. “어떤 의도로 이 음식을 만들었습니까?” 아무리 맛이 훌륭해도 의도되지 않은 맛이나 과잉된 표현이 느껴지는 순간, 그는 가차 없이 감점을 줬습니다.


결국, 거장들이 추구하는 것은 탁월한 기교가 아니라,

정직하게 설계된 ‘가슴 뭉클한 필연성’이었습니다.


끝으로 제가 왜 조수미, 장한나, 안성재와 같은 거장들의 사례를 가져왔을까요? 그들은 이른바 ‘심사위원을 심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조차 매 순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왜’를 찾다 엉뚱한 답에 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거장들조차 답 하나를 위해 며칠 밤낮을 고민합니다.


왜 이 단어여야 하는가

왜 조수미여야 하는가

왜 이 소리여야 하는가

왜 이 맛이어야 하는가


집요하게 ‘왜’를 묻고 있다면, 방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를 믿고 한 번만 더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찾은 해답이 그럴듯한 왜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왜인가?”




네 번째. 발표력 높이기

발표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발성이나 발음을 전문적으로 훈련한 경험이 있다는 점입니다. 순수하게 발표를 목적으로 연습한 사람도 있었고, 한때 아나운서를 꿈꿨거나 취미로 연극 무대에 섰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인상적인 발표를 했던 이는 뜻밖에도 물리를 가르치던 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는 과학관에서 7년 동안 교사로 재직하다 연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연구사가 된다는 건 대형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 관장님과 임직원들 앞에서 보고회를 주관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그의 수업을 지켜봐 왔지만, 수많은 청중을 설득해야 하는 무대 위 그의 모습은 쉽게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그의 첫 프레젠테이션 날. 그는 패기 넘치는 자신감이나 분위기를 띄우는 농담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쉬운 언어와 적확한 비유로 청중의 귀를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설명이 군더더기 없이 귀에 쏙쏙 들어오자, 별다른 장치 없이도 청중의 집중력은 자연스럽게 높아졌습니다. 물론 연습량을 증명하듯 말을 더듬거나 흐름을 놓쳐 당황하는 순간도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질의응답이었습니다. 그는 쏟아지는 질문에 마치 모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막힘없이 답했습니다.

큰 칭찬들 속에서 발표는 마무리되었고, 다음날 외국에서 오는 VIP방문객을 그가 직접 의전한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마치 발표에 대한 작은 보상처럼 말이죠.


그의 발표가 그토록 강력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보여준 발표의 핵심 원칙 두 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원칙 1. “나의 제안서를 어린이에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는 수업 준비의 고충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물리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개념이 생깁니다. 어린이용 『삼국지』와 원작이 다른 것처럼요. 이 오개념을 최소화하면서도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과학 수업의 핵심입니다. 저는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실제로 그는 상대성이론을 고등학생 수준으로 설명하기 위해 꼬박 1년을 매달렸습니다. 수업이 시작된 뒤에도 더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내용을 끊임없이 다듬었죠. 그러던 어느 날, 설문지를 정리하다가 저는 우연히 한 문장을 보게 됩니다.


- 수업에서 좋았던 점 : 상대성이론을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난해한 상대성이론이 재미있었다니, 그의 신념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의 산실, 실리콘밸리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청소부에게 당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할 수 있다면, 어떤 투자자라도 설득할 수 있다.”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역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신입생 수준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건, 아직 이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는 수업을 준비하듯 발표를 준비했을 것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를 다듬으며,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낮은 눈높이까지 설명의 스펙트럼을 넓혔을 겁니다.


둘째, 발표문 30%, 질의응답 70%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의안을 만드는 건 비교적 쉽습니다. 진짜 어려운 건 학생들의 질문을 대비하는 일이에요. 수업 준비에서 강의안이 30%라면, 질의응답이 70%입니다.”


이 습관 덕분에 그는 발표회 날 임직원들의 질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예상했고, 질문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먼저 검증했기 때문입니다.


질의응답의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질문을 정리하다 보면 기존 발표문보다 더 나은 설명 방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질의응답 문안이 다시 발표문으로 교체되고, 그 과정에서 발표의 완성도는 한 단계 더 높아집니다.


이상은 수업에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그만의 '발표 비급'이었습니다. 이 비급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한 방향만큼은 제시해 줍니다.




다섯 번 째. 맺음말

끝으로 저는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이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네 수준이 낮아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오만함을 내려놓고,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내 말을 다시 고치겠다”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제가 과학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며 가장 좋았던 점도 그 부분이었습니다.

제 질문이 서툴고 엉성해도, 그들은 질문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과학을 모르는 제 눈높이에서 다시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마 발표도 그와 같을 겁니다.

상대가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내 설명이 아직 덜 다듬어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프리젠테이션은 ‘승부’가 아니라 ‘설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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