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후임 중에 강남 도곡동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는 ‘법’을 잘 아는 ‘무법자’였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가짜 면허증으로 대포차를 몰았고, 음지에서 불법 카레이싱을 즐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채업자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수많은 편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개인 간 계약서’의 위력이었습니다. (이는 앞서 다단계 편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입니다.)
예컨대, 쌍방이 합의해 신체적·정신적·물질적 피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작성하면, 이후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방식을 실제로 써먹었습니다. 술집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희롱한 젊은 남성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내가 100만 원을 줄 테니, 나한테 딱 5분 동안만 맞아라.”
돈에 눈이 먼 남성은 후임이 작성한 계약서에 지장을 찍었습니다. 옆에 있던 지인들까지 입회인으로 지장을 찍게 해 '자발적 합의'임을 공증했죠. 검도를 배웠던 후임은 봉걸레자루를 부러뜨려 죽도처럼 휘둘렀고, 5분 만에 1천만 원의 이상 상해를 입혔습니다.
피해자 측에서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지만 결과는 무혐의였습니다. 상대방은 “맞기로 계약은 했어도 무기를 쓸 줄은 몰랐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계약서 조항 어디에도 ‘도구 사용을 제한한다’는 문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후임이 처음부터 교묘하게 계약서를 설계한 것입니다.
이 무자비 일화를 통해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개인 간의 계약서는 결코 가볍게 써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부동산이나 금융 등 큰돈이 오가는 계약 전에는 반드시 사기 피해 사례와 법적 보호망을 숙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폭력적인 이야기는 우리 인생에 직접적인 도움이 안 됩니다. 물리적인 폭력은 약자의 싸움 방식입니다. 드라마나 웹툰 주인공이 주먹으로 악당을 응징하는 건, 작가가 폭력 이상의 고차원적인 전략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법치국가에서 폭력은 써먹을 수도 없는 최하급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이 후임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에게서 우리가 명심해야할 부자의 교육 자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의 아버지는 중소기업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영어와 수학 자산은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흔한 해외 유학도, 개인 과외도 없었죠. 대신 다른 자산을 물려주었습니다.
바로 ‘사업계획서’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타인을 괴롭히는 일만 아니라면 어떤 사회 경험도 허용했습니다. 대신 무엇을 하든 제대로 된 사업계획서를 요구했습니다. 후임은 중학교 때부터 진절머리가 나도록 사업계획서를 썼다고 고백했습니다.
덕분에 목적 없이 군에 입대한 저와 달리, 그는 향후 5~10년 치의 인생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반병으로 복무하다 부사관(기무사)에 지원해, 5년 동안 근무하며 창업자금 5,000만 원을 모으겠다고 했습니다. 목표는 자동차 튜닝숍이었습니다. 워낙 자동차를 좋아하기도 했고, 불법 카레이싱 경험으로 시장의 생리를 잘 알 뿐더러 인맥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일탈은 허용했지만 ‘막연한 꿈’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는 훈련을 반복시킨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그 후임이 부자 아버지에게 거의 손을 벌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포차도, 레이싱 비용도 모두 자기가 벌어서 충당했습니다. 튜닝숍 창업 역시 스스로 밑천을 마련할 계획을 짰죠. 어쩌면 그의 아버지는 ‘사업계획서’를 통해 자식에게 ‘독립심’이란 자산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배울 점은 이 친구가 지혜를 구하는 방식입니다. 그는 도서관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고급 바(Bar)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시는 40~50대 남성들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들 다수는 대기업 임원 혹은 중소기업 사장들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회식을 피하고 싶은 조직의 리더들이었죠. 하지만 이 후임은 먼저 대화를 청했고,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수천만 원짜리 인생 노하우를 공짜로 배웠습니다. 이 대담한 습관은 실제 기회로 이어졌고, 우연한 대화로 맺은 인연을 통해 취업까지 하게 됩니다.
한 철학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술집에서 이성이 아니라 동성에게 말을 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이 후임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무법자였기 때문에 누구 보다 법을 많이 공부했고
학교 교육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인생 선배들을 직접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후임을 돋보이게 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막연한 꿈으로 두지 않고,
A4 한 장짜리 계획으로 끌어내리는 능력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목표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목표는, 아직도 막연한 꿈입니까?
아니면 구체화된 한 장의 계획입니까?
이 번에 배운 부자의 교육 자산은 더 큰 꿈을 꾸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꿈을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꾸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제안서가 타인을 설득하기 위한 '희망 사항'이라면, 사업계획서는 내 삶을 수익화하기 위한 '실행 설계도'입니다. 후임이 휘둘렀던 진짜 무기는 손에 든 봉걸레 자루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수치화하고 시뮬레이션했던 그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돈을 탐내는 대신, 아버지가 세상을 장악하는 방식인 '기획력'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위해 단 한 장이라도 치밀한 계획서를 써 본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