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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십칠일빈곳 Oct 10. 2022

누군가에게 기억된 ‘개’ 또는 ‘돼지’라는 우리의 모습

우리가 잊고 있었는지 모를 우리의 모습


최근 ‘돼지의 왕’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주된 내용은 학교폭력에 관한 것이며, 학교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 또는 일반학생을 ‘개’와 ‘돼지’에 비유하고 이를 계급화해 표현한다.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리고 중학생이 느끼기엔 너무 현실적이라 서글프기까지 하다. ‘개’로 비유되는 계급은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며,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이들을 칭한다. 반면, ‘돼지’로 비유되는 이들은 무언가가 부족한 학생들이다. 싸움만 잘하거나, 공부만 잘하거나 사회적 지위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학생이다. 그 ‘돼지’라는 부류 중 ‘개’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가 바로 ‘돼지의 왕’으로 칭해진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20년이 지난 후 치밀한 계획을 세워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 가해자를 찾아가 복수한다. 그 복수의 방법은 납치·해킹·약물 등을 통해 결국 잔인하고 끔찍한 살인으로 끝을 낸다.


드라마를 다 본 후 결말에 대해 일종의 통쾌함과 짜릿함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 느낌이 채가시기 전,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과연 학창 시절의 나는 ‘개’였을까 아니면 ‘돼지’였을까 혹은 ‘돼지의 왕’이었을까 하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중 20년 전 초등학교 때 따돌림당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나를 따돌렸던 친구 중 한 명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다. 나는 분명한 피해자였고, ‘돼지’였다고 생각했기에 가해자였던 그 친구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용서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에게 기억된 나의 모습은 ‘돼지’가 아니라 오히려 ‘개’에 더 가까웠다.


그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나날이 지속되던 때, 학교 다니는 게 너무 힘들어서 무리 중 우두머리와 흔히 말하는 맞짱을 뜨고 쓰러뜨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왕따를 시킨 나머지 친구들을 차례차례 일방적으로 폭행했었다. 당시 나에겐 그게 마땅하며, 정의로운 대처였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날 따돌렸던 무리와 어울리게 되었고, 그들 위에 군림하며 편하고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전학을 가게 되며 자연스럽게 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이번 통화를 통해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내가 잊고 싶었던 기억 한 조각을 찾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 친구는 나와의 기억을 이젠 추억으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20년간 잊지 못한 내 상처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흔히 때린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맞은 사람은 기억한다는 말이 있듯 나 또한 피해당한 사실만 기억하며 자기 연민에 뼈져 살았는지 모르겠다.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할 것이라는 생각에 약자인 ‘돼지’로 선한 삶을 살았다 자위했는지 모르겠다.


이 친구 말고도 나를 ‘개’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함과 알 수 없는 그들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우리 모두 누군가에겐 ‘개’이고, 누군가에겐 ‘돼지’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당신의 기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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