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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bokenpier Jun 29. 2017

나와 너의 다른 잣대

"저질 대중문화의 범람이 문제입니다"

"공동체가 붕괴됐어요"

"흉악범죄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자질구레한 노상방뇨도 문제입니다"

"다 잘못됐어요. 학교교육, 가정교육부터 시작되어야 해요"


TV토론에서 나온 말이다. 사회학과 교수, 논설위원, 부장검사가 나와 한국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러나 그들은 도색잡지에 심취해있고, 남의 집 우유를 아무렇지 않게 훔치고, 노상방뇨를 한 사람들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는 관대하면서 같은 일을 한 남들에게는 죄를 묻는다. 단편영화 '지리멸렬'의 주인공들이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같은 행동에 다른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은 흔한 일이 돼버렸다. 정치권에서는 석연치 않게 군면제 아들을 둔 의원이 같은 병역비리가 있는 고위공직자 후보자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단지 요즘 정치권에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로남불은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발현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참전용사에 경의를 표한다는 내용의 현충일 추념사를 발표했다. 하지만 인권변호사 출신인 대통령이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 사건이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차원의 조사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과거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충분하지 못한 사과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피해자들에게 사과의 '사'자도 꺼내지 않는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 규모로 죄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같은 죄목에 대해선 그에 합당한 사과 인식이 필요한 법이다. 강점기 일본이 저지른 만행에 정당하게 분노하려면, 적어도 우리 자신의 일도 반추해보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돌아보는 눈과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까지 필요하다. 사회로 확장해 생각하면 더욱 어렵다. 사회 전체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와 잘못된 면을 밝힐 집단지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익숙해지는 것은 개인과 사회 전반적으로 냉철한 자기 관찰과 반성의 쇠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사회는 무엇이 잘못이고 아닌지 따지는 것도 의미를 축소시킨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쯤에 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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