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단군신화 속 곰은 환웅에게 받은 마늘과 쑥으로 동굴에 100일간 버틴 끝에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비틀어보자.
만약 곰이 그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 채 동굴 속에 쳐박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럼 웅녀가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지도 못했을 테고, 이후 고조선이 세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사 시간에 귀에 박히도록 들은 신화는 사라졌을 것이고, 홍익인간이나 한민족이라는 개념 같은 건 허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곰이 아니라 호랑이가 그 곁을 차지했을 수도.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쓸 생각을 하며 곰이 웅녀가 되지 못한 세계관을 상상해보았다. 그러다 쓴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곰도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더럽게 맛없는 쑥과 마늘을 먹으며 100일을 버텼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곰으로 퇴행하고 있구나 싶어서였다. 호랑이는 사람이 되기 싫다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기라도 했지, 나는 동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지도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은 잔인하다 싶을만큼 빠르게 흘러갔고 그 사이에 나는 곰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상태로 동굴 속에 쳐박혀 지냈다.
24살, 학교를 졸업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31살에야 마침내 동면에서 깨어났다.
어느 시인이 잔치가 끝났다고 선언한 30살에서 1살을 더 먹고 나서.
계기는 정말 단순했다. 앞자리 숫자 변화로 그제서야 시간의 흐름을 체감했기 때문에.
단순한만큼 무서워졌다. 동굴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그 시간의 흐름이 무겁게 체감되어서.
몇 년을 우주에 나가있다가 지구로 귀환한 우주비행사가 느끼는 중력이 이만큼 무거웠을까 싶었다.
무겁게 온 몸을 짓누르는 공백을 견뎌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찾고, 찾고, 정말 열심히 찾다가 그 끝에서 문득 글을 떠올렸다.
어릴 때부터 사랑하고 열망했지만 끝내 저멀리 던져놓고 도망갔던 글쓰기가.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몇 년 전 깔아놓고 단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으면서.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동굴 속으로 다시 숨어들게 될 거 같아서.
살기 위해서, 동굴 바깥으로 나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글쓰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이 글은, 브런치는 쑥과 마늘이다. 다만 시간은 장담할 수 없다.
곰처럼 100일이 걸릴 수도,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다만 버티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