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가는 길
열심히 시나리오 책을 읽는 서진.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잠깐 보고,
다른 책들을 잠깐 보고, 또 다른 책들을 잠깐 본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모니터 “뭔 개소린지 모르겠다.”
태풍과 서진 둘만 있다.
서진 : 저 결정했어요.
태풍 : 뭐를?
서진 : 시나리오 도저히 못 쓰겠어요.
태풍 : 그래. 그럼.
서진 : 우씨 뭐야 이게?
태풍 : 쓰기 싫다며?
서진 : 네.
태풍 : 그럼 쓰지 말아야지.
서진 : 어? 이게 아닌데..?
태풍 : 쓰기 싫다며 그럼 안 쓰는 게 맞아.
서진 : 진짜 안 써도 되요?
태풍 : 응.
서진 : 이상하게 그러니깐 막 쓰고 싶은 감정이 올라오는 거 같기도 하고?
태풍 : 아니야. 쓰지마. 뭐 한두 번이야? 시작하고 포기하고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그냥 포기해. 인생을 포기
하는 건 어때?
서진 : 에헤이 또 말을 섭섭하게 하네. 그게 아니지.
태풍 : 맞아. 마흔 살 돼서도 쉰 살 돼서도 이렇게 살면 돼.
서진 : 아 근데 개놈새끼들. 왜 안 와?
태풍 : 촬영 갔어.
서진 : 무슨 촬영이요? 다같이요?
태풍 : 응. 다같이.
서진 : 어떻게? 신기하네..
태풍 : 카메라 샀잖아.
서진 : 네?
태풍 : 샀어.
서진 : 누가요?
태풍 : 내가.
서진 : 진짜로?
태풍 : 어.
서진 : 돈은요?
태풍 : 아. 얼마 전에 광고 찍었었잖아. 그거 결혼자금으로 하려고 했는데 너가 작품 쓴다고 해서 내가 리더로서 카메라 샀지. 뭐 카메라라도 있어야 촬영을 하지. 다들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서진 : 결혼자금으로 카메라....
태풍 : 괜찮아. 뭐. 작품 안 찍으면 되지.
이현, 덕재, 지영, 덕희 들어온다.
지영 : 오빠. 카메라 완전 좋아요!!! (서진에게) 오빠 오늘 온다고 했었어요?
서진 : 아. 아니.
이현 : 형 오셨어요. (태풍에게) 오우 화질 장난아닌데요?
덕재 : 우리 이제 영화제 갈 날만 남았네요.
덕희 : 그래요. 우리가 간드아. 영화인들이여. 우리를 기대하라.
서진 : 진짜 카메라네.
태풍 : 그럼 진짜 카메라지.
지영 : (서진에게) 우리 카메라 산 지 몰랐어요?
이현 : 태풍이형이 형 작품 쓴다고 결혼자금으로 쓰려던 거 우리 팀을 위해서 카메라 샀어요.
덕희 : (서진에게) 작품은 잘되가?
덕재 : (서진에게) 시나리오 책도 빌리시고 엄청난 작품이 나올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지영 : 작품은 잘 되가죠?
서진 : 아.. 그게..
태풍 : 서진이 작품 안 쓰겠데.
정적
덕희 : (연극톤으로) 이건 악몽일거야.
덕재 : 왜!!??!!
지영 : 진짜요?
이현 : 어? 카메라 샀는데.
태풍 : 작품이 안 써지니깐 그럴 수도 있지.
정적
덕희 : 그래요. 그럼.
덕재 : 뭐 어쩔 수 없지.
지영 : 그래요. 그럼. 오빠 나가세요.
이현 : 형 뭐해요? 아직도 계셨어요?
서진 : 어?
태풍 : 서진이도 최선을 다했겠지. 못 하겠다는 걸 어떡해? 나는 결혼자금 빼가지고 목숨 걸고 카메라 샀는데,
이제 결혼도 얼마 안 남았지만, 팀을 위해서 카메라를 샀는데 서진이는 우리 팀에 대한 생각이 없는거겠지? 그걸 우리가 뭐 강요할 순 없잖아. 안 그래?
덕재 : 그렇죠. 뭐. 저도 지금 “아차맨” 쓰느라 원형탈모 생길 지경인데, 서진이형은 글 쓴다고 모임에도 안 나오고 그랬는데... 괜찮아요. 형. 앞으로 뭘 한다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서진 : 그렇지. 내가 무슨 작품을 쓰겠다고, 내 깟게. 아오. 다시 한번 깨닫네. 우리가 무슨 작품이야? 연기만 해도 벅찬데,
지영 : 오빠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서진 : 무슨 말?
지영 : 우리라니요? 우리는 작품을 위해서, 알지도 못 하는 카메라 들고 막 찍고 연습하고 있는데, 우리가 아니
라 오빠 혼자.
서진 : (침울하게) 아.. 그래... 우리가 아니라 내가 무슨 작품..
덕희 : 형. 우리 밖에서 찍은 거 볼래? 핸드폰이랑 완전 차원이 달라.
태풍 : 뭘 보여줘? 서진이 계속할거야?
서진 : 뭐를요?
태풍 : 우리팀
서진 : (?)
덕희 : 형님 무슨 말을 또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그런데 진짜 계속 할거야??
서진 : 어?
덕희 : 형이 작품 쓴다고 했는데, 이제와서 못 쓴다고 하면 우리가 계속 형이랑 같이 해야 하는거야? 우리는 카
메라까지 샀는데?
서진 : 그건 그렇지.
덕희 : 우리 찍은 거 한번 볼래?
서진 : 아니야. 괜찮아.
덕희 : 아니야. 봐 바.
덕희 카메라를 서진에게 보여준다.
카메라 화면 속. 앵글이 엉망이다.
덕희 카메라 들고 있다. 카메라 밖에서 소리.
덕희 : 오, 장난아니다. 이거.
이현 : 야 잘 나오냐?
지영 : 어떻게 나와? 봐바. (하면서 앵글 밖으로 나간다.) 오오오 진짜 잘나온다.
덕재 : 안녕하세요. 배우 여덕재입니다. 저는 걷는 걸 좋아하구요. 하정우 선배님처럼 될 거예요.
덕희 : 형 연기 한번 해봐요.
덕재 : 미친놈 아니야. 무슨 연기를 해?
점차 앵글이 잡혀간다.
지영 : 아무 연기나 해봐.
덕재 : 밖에서? 연기를 하라고 ? 아, 난 갑자기 연기시키는 사람들 진짜 예의 없다고 생각해.
이현 : 그럼 하지마. 새끼야.
지영 : (다시 앵글로 나오며) 이거 태풍오빠가 집에 가서 확인하겠지? 고맙다고 인사하면 어떨까?
이현 : 그거 좋은데?
지영 : 이현아 너 먼저 해.
이현 : 음... 아.. 안녕하세요. 태풍이형. 우리 하랑의 얼굴을 맡고 있는 이현입니다. 형님이 결혼자금까지 희생하면서 우리 팀을 위해서 카메라를 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음 누가 할래? 내가 들게. 덕희 나와.
덕희 : 형!!!!!!!!!!!!!! 형!!!!!!!!!!! 너무 고마워~~~~~~~~~~~~~~~~~~~~요!!!!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지영 : 야야. 그런데 태풍오빠한테만 이야기 하면 그렇잖아. 서진 오빠도 글 쓴다고 엄청 고생할텐데 나는 서진오빠한테 이야기 할래.
덕희 : 서진이형이 이걸 어떻게 봐?
지영 : 태풍오빠한테 보고 영상 단톡방에 올려달라고 하면 되지.
(서진에게) 오빠. 글 쓴다고 고생많아요. 우리팀에 여자가 저 밖에 없어서 죄송해요. 오빠 좋은 작품 쓸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우리팀이랑 함께 해서 진짜 재밌네요.
덕재 : 형!!!!!!!!!! 막 표현은 못 했지만 형 고마워요. 형 말대로 어차피 디지게 힘든 거 이래 힘드나, 저래 힘드나. 카메라도 생겼는데 디지게 써보세요. 저도 아차맨 쓰고 있잖아요.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태풍이형! 카메라 진짜 개좋네요. 벌써 영화찍는 느낌.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끝까지 함께 해요오오!!!!!!!!!
덕희 : 형. 형. 형. 안녕!!
다같이 인사한다.
덕재 : 어디 한번 봐바 (하며 앵글 밖으로 나간다.)
영상 끝.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서진.
서진 : 미안하다.
덕재 : 형. 함께 해봐요.
이현 : 그래요. 같이 머리 싸매가면서 해봐요. 우리 할 수 있어요. 어차피 출연 못 하는 거.
덕희 :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야지.
지영 : 우리 할 수 있어요.
한 쪽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태풍 : (눈물범벅) 고맙다 얘들아.
타이틀 <배우가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