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가는 길
지영, 덕희 벤치에 나란히 앉아있다.
덕희 : 누나. 혹시 그거 알고 있어?
지영 : 뭐?
덕희 : 나 사실.
지영 : 아니야. 덕희야. 아무 말도 하지마. 별로 알고 싶지 않아.
덕희 : 아니야. 누나. 이거 알아야 돼.
지영 : 괜찮다니깐.
덕희 : 누나 이거 모르면 앞으로 힘들어질 수도 있어.
지영 : 힘들어져도 괜찮아.
덕희 : 진짜?
지영 : 응.
태풍, 이현, 덕재. 지영과 덕희 연기하는 걸 촬영하고 있다.
지영 : 나 가볼게.
지영 일어나서 가는데,
덕희 : (큰 소리로) 누나!!!
진짜 이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어. 그런데 이거 말 안 하면 내가 마음 편히 집에 못 갈 거 같아서 듣기 싫어도 들어줘.
지영 : (짜증 섞인 목소리로 뒤돌아서며) 야! 황덕희! 너 마음 편하자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거야?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안 해도 돼. 안 들어도 된다고, 나 그냥 갈게. 내버려둬.
덕희 : (심호흡을 하고 큰 소리로) 누나 엉덩이에 휴지 있어!!!!!!!!!
화면 지영의 바스트에서 내려가 엉덩이 쪽을 비춘다. 지영 매우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지영 : 악!! 으아. 이게 뭐야.
태풍, 덕재, 이현, 지영, 덕희 방금 찍은 거를 보고 있다. 다들 매우 진지하다.
태풍 : 음... 덕희 연기가 자연스럽지 못 해.
이현 : 지영이도 여기서 뭔가 많이 아쉬워.
덕재 : 덕희가 더 고백하는 분위기를 내줘야 하는데, 그냥 자연스럽기만해.
태풍 : 야. 이게 뭐가 자연스러워. 이건 자연스러운게 아니라 비자연스러운거야.
덕재 : 아니예요. 그냥 자연스럽기만 해요. 여기서는 더 해줘야죠.
태풍 : 뭐를 더해? 일단은 자연스럽게 해야지.
덕재 : 형님. 이 정도면 자연스러운건데 인물의 감정을 더 표현했어야 해요.
태풍 : 아니야. 아니야. 감정이 더 들어가면 옛날 연기 스타일 돼. 80년대도 아니고.
덕희 멀뚱멀뚱
덕재 : 자연스러움 안에 감정이 들어가야 되요. 미묘한 그 느낌적인 느낌.
태풍 : 아니야. 이제 와서 말인데 덕희는 연기할 때 힘을 더 빼야 돼. 너무 힘을 줘서 연기해.
그전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말이 나왔으니 할게. 자꾸 뭔가를 더 하려고 하지마. 그냥 편하게 해.
덕희 : 네.
덕재 : 지금 충분히 힘을 빼고 있는데 뭘 그래요?
태풍 : 야.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야.
덕재 : 그걸 너무 정답처럼 말하니깐 그러죠.
태풍 : 정답이 아니라 내가 느꼈을 때는 그렇게 느꼈다는거지. 우리 지금 연기 코멘트 해주고 있는거잖아.
덕희 : 네네. 괜찮아요. 그런데 저도 이렇게 한 이유는 있어요. 결국에 해석 차이인 거 같은데요. 관객이 느끼기에는 고백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야 하지만 진짜 고백이 아니잖아요. 그 미묘한 감정선을 잘 타야하는데, 저는 진짜 고백하는 느낌으로 한 거예요. 그래서 감정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느껴진 거 같아요.
태풍 : 그렇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덕재 : 그래.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데 나는 좀 더 갔으면 하는거야. 지금은 너무 밋밋해.
덕희 : 형이 하질 그랬어?
덕재 : 어?
덕희 : 이거 형이 하고 싶다고 했잖아.
덕재 : 그래. 재밌을 거 같았지.
덕희 : 형이 하질 그랬어?
덕재 :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덕희 : 뭔데요?
덕재 : 왜 갑자기 반말이야? 기분 상했어?
덕희 : 아. 내가 그랬나...요?
덕재 : 아 뭐 반말할 수도 있지. 너 지금 태풍이형이 연기 지적한 거 가지고 기분 나빠서 나한테 똥 싸는거야?
이렇게 감정적으로 나오면 무서워서 어디 코멘트 하겠냐?
덕희 : 아니. 그건 아닌데요.
지영 : (분위기 전환하며) 난 어떻게 봤어?
이현 : 넌 마지막에 리액션 너무 구렸어.
어이없는 지영.
이현 : 이건 진짜 어려운 리액션인데, 그렇게 하면 반전이 살지가 않아. 결국엔 그 리액션 하나로 이 장르가 바뀌고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지영 : 구렸구나.
이현 : 응.
지영 : 그래. 고맙다.
이현 : 그런데 다른 부분은 좋았어.
지영 : 뭐가 좋았는데?
이현 : 그냥 다 좋았어.
지영 : 그러니깐 어떤 부분.
이현 : 너가 하는 부분.
지영 : 내가 하는 부분 어떤 게 좋았어?
이현 : 아우. 그걸 말을 해야 아나?
끼어드는 덕희
덕희 : 누나. 나는 누나가 내 말을 안 듣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러니깐 계속 혼자 하는 느낌?
지영 : 나 니 말 들었는데?
덕희 : 소리는 들었겠지. 그런데 진짜로 하는 느낌이 안 들었어.
지영 : 진짜로 했어. 난 너가 고백하는 하는 줄 알고, 그걸 거부하고 싶었고
덕희 : 그런 상태만 가지고 있었지. 나와 호흡하는 느낌이 안 들었어.
지영 : 나도 마찬가지야. 너가 제대로 말을 줘야지 내가 받지.
덕희 : 아니.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누나도 그렇게 말하지 말고,
태풍 : 덕희는 힘을 조금 더 빼고 지영이는 디테일한 것들만 좀 더 살렸으면 좋았을 거 같애.
지영 : 어떤 디테일이요?
태풍 : 아까 이현이가 말한 것처럼 그... 마지막 리액션이 구렸어.
지영 : 아 그럼 그거 어떻게 해야되는데요?
지영 다르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시범을 보인다.
지영 : 이렇게 하면 되나?
태풍 : 이렇게 하면 우리가 연기에 대한 코멘트를 해줄 수가 없지. 코멘트를 수용할 줄 알아야 우리도 솔직한 연기 피드백을 하고 그래서 우리가 더 나아지지.
덕희 : 아니. 좋은 피드백을 해달라는 건 아닌데, 뭐 좀 그래요.
삽입 장면.
서진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상을 수상하는 걸 유튜브로 보고 있다. 거기서
마틴 스콜세지를 언급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 부분을 보고 영감을 얻는다. 노트에 옮긴다. “가장 개인적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태풍 : 아. 그래 미안하다. 기분 나쁘라고 한 건 아니고, 너를 위해서.
덕희 : 연기 피드백 좀 더 정확하게 해주셨으면 해요.
지영 : 맞아요. 연기 피드백은 되게 조심스러운 부분인 거 같아요. 다들 의견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데 각자가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니깐,
덕재 : 그래. 그건 맞아. 조심스럽긴 하지.
태풍 : 야. 그냥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버릴 건 버리면 되지.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쁘냐?
이현 : 그래. 우리 서로 도움 주려고 모인 거 아니야? 이렇게 예민하게 나오면 뭘 어떻게 해?
삽입 장면.
서진이 뛰는 발이 보인다. 환희에 차서 뛰어오고 있는 서진.
지영 : 그건 그렇긴 한데 너가 아까 좋다고 한 것도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어떤 표현들이랑 행동에서 이런 게 좋았다고 이야기 해 줘야지. 너무 막연한 이야기만 하니깐 그렇지.
덕희 : 그래요. 자연스러운 게 도대체 뭔데요?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건가?
태풍 : 그럼 지금은 부자연스러운거야?
덕희 : 모르죠. 저는.
태풍 : 이 새끼가 싸가지 졸라 없네.
덕재 : 에이 형님.
태풍 : 아니 이 새끼가 싸가지 없이 말을 하잖아. 그럼 니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운 건 뭔데?
덕희 : 몰라요. 알면 자연스럽게 했겠죠.
태풍 : (음성 높아진다.) 야 너 미쳤냐?
삽입 장면.
모퉁이를 지나는 서진.
덕희 : 안 미쳤는데요.
다들 일어나서 말린다.
태풍 : 와 내가 미치겠네.
지영 : 덕희야 왜 그래. 내가 미안해. 죄송합니다. 그래
덕희 : 아 내가 뭘 어쨌다고!! 아 그렇잖아. 자연스러운 게 뭔데?
계단을 올라오는 서진.
태풍 : 너 새끼야. 일로 와바.
난장판이 된다.
“야!
그만하세요.
아 뭐야 이게.”
문이 열리고 서진
서진 : (매우 기쁘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타이틀 <배우가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