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란시스 하'에 대한 단상
나는 체질적으로 대학과 잘 맞았다. 관심 있는 강의를 골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대학생이란 이름을 달고 이런저런 대외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특별한 대학생활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하는 것들은 나도 거의 다 해봤다. 여행도 갔고, 휴학도 한 학기 했고, 동아리도 들어봤다. 그런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딱 8학기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학교가 좋아서 강의를 열심히 듣다 보니 졸업학점이 금방 채워졌고, 학점이 다 채워지니 더 이상 학교에 남아있을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질적으로 대학과 잘 맞았다기 보단, 그냥 캠퍼스가 좋았던 것 같다. 휴일에 한적한 캠퍼스를 걷고 있자면 학교가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된 것 같았고, 매일 같은 산책로를 걸어도 이상하게 질리지 않았다. 학교는 내게 안정감을 주는 장소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졸업 이후에도 자연스레 학교에 남아 이런저런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안정감은 학교에 소속되어 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거였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난 졸업식 바로 다음날에 깨달았다.
졸업생이 된 첫날, 평소처럼 도서관에 가서 노트북을 켰다. 학내 와이파이가 연결되지 않았다. 재학생이 아니니 대출이 안 되는 건 당연하지만, 와이파이까지 못쓰게 할 줄은 몰랐다. 정말 치사했다. 그 외에도 학생증을 아무리 찍어도 건물 출입이 제한되었고, 아직 학교를 다니는 동기들이 '어? 졸업했지 않아?'라고 물어보며 인사하는 게 머쓱해졌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이 어색해졌다. 내가 졸업생이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자의식 과잉이라고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학교를 배회하는 졸업생으로 사는 건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소속이 없는 건, 그러니까 나를 수식할 어떤 단어가 없는 건 굉장히 어정쩡했다. 우선 남들에게 나를 소개하기가 힘들었고, 안부인사에 대답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남들은 다 앞서 나가는데 나만 정체되어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든 순간 평생 지겹지 않을 줄 알았던 캠퍼스가 지겨워졌다. 더 이상 좋아하던 산책로를 걸어도 즐겁지 않았고,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는 것처럼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정쩡한 시간을 경험했기에, 또 지금도 그 시간을 지나고 있기에 영화 '프란시스 하'는 내게 애틋하게 다가왔다.
'프란시스 하'의 프란시스는 독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평범하다. 그는 무용단 소속이긴 하지만, 당장 다음 공연에 오를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높은 월세를 감당하기엔 힘이 들고, 위로가 되어주던 친구 소피마저 조금씩 멀어져 간다.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프란시스뿐이다. 프란시스가 특별히 모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저 평범할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평균값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평범함에는 필연적으로 정체가 따른다. 어떤 일이 닥치든 막힘없이 헤쳐나가는 사람은 호그와트의 역대급 교장인 알버스 덤블도어뿐이다. (물론 그 또한 청년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프란시스에게 누군가 직업을 물어보면, 평범한 그는 이렇게 말하며 얼렁뚱땅 넘길 수밖에 없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복잡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사실 프란시스도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뛰고 있지만 그게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제자리걸음을 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안다. 남들은 그것이 다 언젠가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고 이야기해주지만, 도대체 그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날이 언젠지 감조차 잡을 수 없고, 앞서가는 남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혼자만 유예되고 있는 기분이 얼마나 지독한지 말이다. 누구나 겪는 과정인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럼 이 지독한 기분을 견뎌내는 방법은 도대체 무엇일까. 영화는 프란시스의 성공이라든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보여주진 않는다. 다만 노래 하나를 들려준다. 데이비드 보위의 'modern love'다.
There's no sign of life
It's just the power to charm
I'm lying in the rain
But I never wave bye-bye
But I try, I try.
영화가 노래를 들려줬으니, 내 멋대로 노래를 해석해봤다. 노래 가사처럼, 삶은 이렇다 할 신호를 보내주지 않는다.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선택지가 존재할뿐이다. 프란시스가 우편함에 자기 이름을 접어 끼워 넣는 것처럼, 가끔은 한 발 물러나도 된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무용을 놓치지 않았던 프란시스처럼 계속 도전해봐도 된다. 그냥 그렇게 그때그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선택지의 손을 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단정한 스커트를 입은 채 남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춤추는 프란시스가 멋있어 보인 것은, 그가 그런 방식으로 어정쩡한 시간을 버텨냈기 때문이었다. 프란시스처럼 그렇게 어정쩡한 시간을 버텨내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나름의 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반짝거리는 시간들이 나를 수식해줄 새로운 단어들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