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점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달라진다. 낮에는 무언가에 몰두하다가도, 밤이 되어 침대에 눕기만 하면 '오늘도 시간을 죽였다'라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리고 침대에 눕기만 하면 곧장 머릿속으로 노래 '말하는대로'가 재생된다. 무한도전 가요제에서 이적과 유재석이 부른 노래, '말하는대로'의 핵심은 희망과 응원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부분은 노래의 초반부다. 9년 간 무명을 겪은 유재석의 고백, '나 스무 살 적에 하루를 견디고 불안한 잠자리에 누울 때면 내일 뭐하지 내일 뭐하지 걱정을 했지' 부분만 반복 재생된다. 이 가사가 이렇게까지 공감이 될 줄 노래가 나왔을 당시엔 몰랐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나를 움직이는 것이 단기 목표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월과 주, 그리고 일로 이어지는 계획표를 짜고, 그에 맞는 목표를 세워 성과를 내야 활기를 찾는다. 올해의 마지막 공채가 끝나자 나는 목표를 잃었고, 목표를 세우지 못하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스케줄표는 텅텅 비었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기 위해 네모칸은 그렸지만 네모칸 옆에 무엇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일 뭘 할지 모르는 기분은 이상했다. 습관처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스케줄표를 펼치고, 이것저것 챙겨 어딘가로 나갔지만, 멍하니 시간을 죽일 때가 많았다. 변화가 필요함을 알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나를 자극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어젯밤엔 늘 가던 카페 대신, 집에서 꽤 떨어진 도서관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장소가 바뀌면 마음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든든하게 챙겨 입고, 가방을 챙겼다. 토익책을 챙기려다 빼버리고, 컴퓨터와 공책, 필통만 챙겼다. 낯선 곳으로 가는 만큼 가방은 가볍게! 그리고 이 선택은 최근 내가 한 선택들 중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길눈이 어두웠다. 축척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거리=속도X시간' 수학 문제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중학생이 되었고, 사회탐구과목으로 지리를 선택하지 않은 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친구가 마중을 나와야만 약속 장소로 향할 수 있는 대학생으로 성장했다. 다행히 '알아서 찾아오라'며 나를 강하게 키운 친구들 덕분에 나는 지도 앱을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것보다 지도 앱을 더 신뢰하는 디지털-인간이 되었다. 지도 앱에 나오는 '파란점'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달까. 내 위치를 표시해주는 파란점, 폰을 이리저리 휘두르면 방향까지 알려주는 최첨단 기술 덕분에 길을 잃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 결과 나는 10번 중에서 3번 정도만 길을 잃는, 아주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오늘은 30%의 확률에 들어가는 조금 미성숙한 날이었다. 배터리를 빵빵하게 충전하고, 지도 앱만을 단단히 믿고 출발했다. 환승 없이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5분 거리의 정류장을 두고, 15분이나 걸어 먼 정류장까지 찾아갔다. 도서관은 종점 바로 직전의 정류장이었고, 몇 번씩이나 지도를 확인했지만 혹시 몰라 버스 안내방송을 하나하나 챙겨 들었다. 지도 앱에는 분명히 A정류장 다음이 도서관, 그리고 종점이라고 나와있었다. 그런데 버스는 도서관을 들르지 않고 바로 종점으로 향했다.
뭘까. 지도 앱이 잘못한 걸까, 버스가 잘못한 걸까, 아님 내 잘못인가? 배신감이 어렸지만 우선 내렸다. 종점이니 내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도 없긴 했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패딩을 벗어 들고 지도 앱을 켰다. 비록 나를 배신한 놈이었지만 지금은 믿을게 얘밖에 없었다. 평일 낮 버스 종점에는 사람들이 없었으니까. 파란점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20분이 걸린다고 했다. 그래도 가까우니 다행이었다. 도서관까지 걸어가는 20분 동안 나를 스친 거리 풍경은 휑한 공사판, 청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뭇잎 가득한 도로, 쌩쌩 달리는 화물차들이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쨌거나 도서관에 잘 도착했다. 가방에서 토익책을 빼버린 선택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 뭔가 웃겼다. 어김없이 길을 잃어버린 나 자신이 너무 웃겨, 혼자 피식거리며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열람실로 올라가선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 에세이 칸으로 갔다. 원래 읽고 싶었던 책은 다 대출 중이었다. 모처럼 도서관에 왔는데 모두 다 대출 중이라니. 이것 또한 계획 밖의 일이었다. 한참을 고민해 김애란 작가님의 '잊기 좋은 이름'을 골라 들었다. 산문집이지만 순서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조금 읽던 나는 또 콧구멍을 벌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풍속'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늘 여름이었다. 내가 길을 헤맸던 날은. 햇빛에 하얗게 표백된 도시 한가운데서 풍향을 가늠하며 서 있던 때는. 그리고 여름이라서 그때마다 나는 몹시 더웠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날, 그리고 또 실제로 길을 헤맨 날, 길을 헤맸던 작가의 글을 읽다니. 작가님도 더웠다고 했다. 나도 오늘 더웠다. 비록 작가님은 여름이고, 나는 겨울이지만 말이다. 길을 헤맬 때는 언제나 땀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도 '헤맨 적'이 있다는 사실이 또 묘하게 위로가 됐다. 한참을 그렇게 책에 빠져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모든 게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날이었지만,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진 날이기도 했다. 신기했다.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아도 괜찮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마 나는 오늘도 자기 전에 누워 내일 뭘 할지를 고민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길을 잃었고, 어떻게든 버텨냈다. 솔직히 그 버티는 과정은 재밌었다. 오늘은 그럼 됐다.